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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별의 씨앗명품 조기교육?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2년 02월호


대학 강의를 그만 둔 이유 중 하나는 ‘책’이다. 언제까지 무슨 책을 읽고 오라고 해도, 읽지 않는 비중은 해가 지날수록 늘었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학생들이 점점 태연해졌고 나아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책 살 형편이 안 된다’는 말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등록금과 주거 비용 등으로 청년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기에 책도 비싸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야속했다. 

비싸게 여겨진다는 건 주관적이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은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하기에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책값이 절대적으로 비싼 게 아니라, 상대적 가치에서 밀렸다. 어학연수 비용을 모아야 해서, 토익 학원 수강료도 벅차기에 책 구매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책이 우선 정리대상이라는 게 야속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건 인간의 당연한 적응이니 수긍된다.

하지만 여기서 지나치게 확장된 벽에 마주하면 혼란스럽다. 사는 게 바빠서 이렇다면서 머리 긁적거리는 흉내라도 내면 좋겠지만, ‘이런 책 사서 뭐해요?’라면서 다가오면 숨이 막힌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이를 극복하는 매뉴얼만이 부유하게 되고 여기에 적응하다 보면 ‘불평등을 문제 삼는’ 문장을 마주하는 건 낯설어진다. 그러니 이런 책 살 돈으로 헬스장에서 PT나 한 번 더 받는 게 남는 거라는 실용적 비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건강집착이라기보다는 ‘모든 걸 경쟁하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아니겠는가.

이 그물망을 살펴보면 서글프다. 자신을 드러내는, 보다 직접적인 것에 투자하는 것만이 우선돼야 한다는 강박은 젊은 세대에도 만연하다.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따질 필요도 없겠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 정도는 필요하다’는 말이 많아지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격은 이상해진다. 책은 비싸다는 이들이 비싼 시계와 가방을 구입한다. 삼십 대 후반은 돼서야 내뱉었던 ‘명품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푸념과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무리해서라도 장만해야지’라는 각오는 빨라졌다. 누군가가 비판한들, ‘소비는 자유’라는 소리만 되새김질한다. 자유지만, 그게 어떤 사회를 향하는지는 따져야 하지 않을까?

깜짝 놀랄 뉴스를 접했다. 자녀에게 짝퉁 명품 가방을 사준다는 내용이었다.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런 부모 마음을 고려해서 유치원에서 명품 가방을 종이 모형으로 만드는 활동을 한단다. 가방을 네모난 모양으로 그리고 어설픈 글씨체로 삐뚤삐뚤하게 ‘나이키’라고 적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구찌 등 브랜드별 도안이 있다. 교사들은 이를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며 학부모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평한다. 학부모들은 감동 후기를 카페에 작성한다. 이게 교육적이냐고 따져 물었다는 내용은 기사에 없다.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할까. 천진난만한 걸까? 40년 전에 아이들이 우유갑으로 만든 자동차에 벤츠 마크를 그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른 사이를 구분 짓는 물건이 아이들의 판타지에 침투했다. 그 상상력은 꿈과 사랑이 넘치는 혁신과 거리가 멀다. ‘우리 집에 있네’, ‘너희 집에 없네’, ‘중학생 되면 사주신다고 했어’ 등의 대화로 이어져 여섯일곱 살 무리 사이에 경계선이 생기는 연료가 된다. 이게 열다섯 살 유튜버가 명품 가방 리뷰를 하고 스물세 살 청년이 리스로 고급차를 구매했다고 자랑하는 지금의 우려스러운 세상과 연결되는 건 당연하다.

자본주의가 원래 이런 거라는 태도보다 더 심한 건, 그 어쩔 수 없음에 개인이 체념하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지체시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세상은 불평등한데, 그걸 마흔 살 넘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과 유치원에서부터 사람 사이가 돈으로 구별되는 세상 이치를 알아가는 건 전혀 다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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