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경제는 1970년대 이후 여타 선진국과 비슷하게 금융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성장함에 따라 제조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영국은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제약, 해상풍력발전, 방위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외국인투자 유치와 외국 기업의 사업권 입찰 참여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혁신 역량 보유한 제약·해상풍력 산업 등에 외국 기업 유치해 자국 기업 생태계 조성
외국인투자 유치 확대를 통한 산업 기반 확대의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산업이다. 영국 자동차산업은 1980년대 후반 일본 기업으로부터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해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지금도 닛산, 토요타 등은 영국의 주요 자동차 생산기업이며, 특히 영국의 닛산 선덜랜드 공장은 닛산의 유럽 내 주요 생산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외국 기업의 사업권 입찰 참여 확대를 통한 산업 육성의 대표적인 예로는 해상풍력발전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은 발전사업자 선정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되고 외국 기업 참여에 제한이 없어 독일, 덴마크, 중국, 일본 등 다양한 외국 기업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영국의 주요 풍력발전단지 중 하나인 혼시(Hornsea)의 운영 기업은 덴마크의 외르스테드로 인근 그림즈비에 영국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2020년 기준 영국의 해상풍력발전단지 발전용량 기준 외국 기업의 소유권 비중을 살펴보면 덴마크의 외르스테드 21.2%, 독일의 RWE 10.4%, 노르웨이의 에퀴노어 8.5%, 프랑스의 토탈 3.1%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영국은 풍력터빈과 관련 기술에서 외국 기업과 협력하면서도 영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을 중심으로 자국 기업들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영국 중동부 해안 헐에 지멘스가메사의 영국법인이 있으며 관련 기업 200여 개사로 구성된 해상풍력 분야 비영리기관 THMA(Team Humber Marine Alliance)가 위치하는 등 풍력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이는 자국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외국 대기업을 유치하고 이들과 연계해 자국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전략(linkage program)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산업발전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영국이 기존 모델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해당 산업의 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혁신 역량이 두드러지는 산업으로는 제약산업을 꼽을 수 있다. 미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대형 제약회사가 많지 않음에도 영국 제약산업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이유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로 대표되는 연구개발(R&D) 역량과 원천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과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로 이어지는 골든트라이앵글에 소재하고 있는 주요 연구소와 이들과 연계된 스타트업은 영국 제약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영국은 해상풍력발전의 경우 시장 구조상 터빈 등의 분야에서는 외국 기업에 의존하면서도 혁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 결과의 상업화를 지원하는 ORE 캐터펄트(Offshore Renewable Energy Catapult)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2018년 ORE 캐터펄트와 5년간 R&D 협약을 체결했으며 GE에서 생산한 세계 최초의 12MW 터빈도 영국의 ORE 캐터펄트에서 테스트했다. 영국은 북해 유전개발을 통해 축적한 해양 관련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원천지식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협력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이 같은 혁신 역량은 대학-유관기관(협회, 정부기관)-기업의 3각 체계가 유지해 주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은 이 3각 체계가 이끌어가고 있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R&D 결과를 상업화하고 확대하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미래차산업의 경우 영국에서는 워릭대 국립 자동차 혁신 센터와 영국 자동차산업협회 그리고 다수의 스타트업으로 구성된 체계로 산업이 발전되고 있다. 스마트팜산업 또한 정부출연연구소인 아그리-에피 센터(Agri-EPI Centre)가 산업 성장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리즈대, 스트래스클라이드대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에듀테크산업에도 기업 협회인 영국교구협회(BESA)가 있고 인공지능(AI) 및 가상현실(VR) 관련 연구의 상용화를 지원하는 정부 기관인 디지털 캐터펄트(Digital Catapult)가 있다.
AI 활용한 신약 개발 등 제약 분야 협력은 양국의 산업·기업 가치 높이는 좋은 사례
이러한 영국의 혁신 역량을 고려할 때 향후 한국과 영국의 산업협력은 기존의 상품교역에 더해 새로운 형태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즉, 서로 상대 나라에 물건을 많이 팔려고 하는 것보다는 양국의 산업과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협력의 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산업에서의 한국-영국 간 협력은 좋은 사례다. 한국의 주요 제약사들은 영국의 제약 스타트업 지분 매입이나 이들과의 공동 기술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 제약사들은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영국 제약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R&D 역량을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및 항암제 분야에서의 협력은 한국 제약사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기업 간 협력에 더해, 영국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및 기업창업 지원 기관인 메드시티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교류도 활발하다.
영국의 개방성에 착안해서도 협력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상풍력발전산업의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도 영국의 개방적인 사업권 입찰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해상풍력발전단지 사업권을 확보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 일본 등은 이미 영국 해상풍력발전단지 사업권에 대한 지분을 확보했다. 일본 미쓰비시는 자회사를 통해 모레이 이스트 해상풍력발전단지 사업 지분 33.4%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업권 확보로 일본 엔지니어링 기업 JGC도 공급망 파트너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영국 정부의 기자재 자국 생산 확대 정책을 활용해 기자재 생산 공장을 설립함으로써 영국 및 유럽 해상풍력시장 진출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해상풍력 기초구조물인 모노파일을 생산하는 우리 기업이 영국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제약, 미래차, 스마트팜, 에듀테크, 풍력발전 등 다수의 신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영국의 협력 가능성은 커지고 있고 실제로도 많은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영 FTA에서도 포괄적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산업혁신기술, 에너지, 자동차, 중소기업, 농업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위와 같은 산업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