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어두운 골목 안쪽에 숨은 보석처럼 위치한 커피한약방과 혜민당. 이곳의 주인은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와 <원스>에 출연한 배우 강윤석이다. 수많은 감정을 내포한 눈으로, 그는 후미진 골목에 커피집을 차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을지로’ 뒷골목에 들어선 커피집
‘골목’이라 쓰고 ‘거리’라 읽었나 보다. 을지로 뒷골목은 생각보다 비좁고 어두웠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1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을 성싶지 않은 공간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맸다. 길 건너 빌딩숲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카페 같은 세련된 공간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점심을 먹고 나와 담배를 피우려는 직장인 두 명과 마주쳤다. “여기 어디에 커피한약방이 있다던데….” 둘은 동시에 한 곳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막 빠져나온 후미진 골목이었다. ‘보일 때까지 걸어가면 된다’는 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일 때까지 걸어간 지점에서 ‘을지로삘’이라 쓰인 나무 간판이 걸려 있는 커피한약방을 만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앞치마를 입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는 강윤석 대표를 발견했다.
1950년대의 홍콩과 1900년대 초 개화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공간에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커피향이 가득했다. “9년 전 을지로에 커피집을 열게 된 이유는 을지로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공업지구가 형성된 일제강점기 이래 대한민국 상공업의 역사가 이곳에서 다져졌고,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친근한 지역이었으니까요.”
연극배우인 강윤석 대표에게 을지로는 공연이 끝난 후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과 어슬렁거리다 술 한잔 걸치기에 좋은 곳이었다. 목적지를 정할 필요가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면 그만인 곳이었다. 하지만 젊음의 거리이자 문화 중심지였던 을지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 오히려 개성 있는 상점과 예술가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이 됐다. 젊음의 거리는 홍대와 강남으로 빠르게 옮겨 갔다.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대를 맞으면서 을지로는 출퇴근하는 대기업 직장인들의 빠른 발걸음과 옛 향수에 젖어 빛바랜 골목을 찾는 노인들의 느린 걸음이 교차하는 곳으로 점점 제 색을 잃어갔다.
청춘의 꿈 키웠던 골목에 다시 활력 불어넣어
강 대표가 커피한약방을 ‘하필’ 이곳에 연 이유는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옛 공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예술인으로서, 그 시절 골목에서 수많은 꿈을 키웠던 사람으로서 공간의 간극으로 대변되는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문화와 문화의 단절은 아쉽기만 했다. “개발을 하더라도 보존할 건 보존해야 하는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낭만적인 공간들을 해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피맛골처럼 좁은 골목에 아기자기한 집들과 식당 등이 어우러져 멋을 연출하는 공간으로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암흑지대였던 골목은 골목을 가득 메운 발길, 커피향과 더불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커피한약방을 열고 정확히 4년 후 그는 맞은 편에 혜민당을 오픈했다. 연극배우지만, 어느덧 레트로 무드에 젖고 싶어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커피한약방과 혜민당의 사장님으로 더 유명한 ‘셀럽’이 됐다.
커피한약방과 혜민당이 SNS에서 유명해지고 힙스터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된 데는 독특한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주효했다. 카페 인테리어와 시공을 강윤석 대표가 모두 직접 했다. 배우, 카페 사장 이전에 그는 목공을 하는 목수다. 그가 창단한 극단 이름도 ‘목수’다. 제2차 세계대전 수술실에서 사용되던 조명부터 개화기 양반가에서 사용하던 화려한 자개장까지, 문짝이며 조명, 의자, 테이블, 자개장 등 카페에 평범한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골목의 커피집을 찾는 사람들처럼 카페를 채운 모든 것은 저마다의 시대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단절된 것들을 연결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암흑지대로 방치됐던 좁은 길목은 어느새 적막함 대신 봄날의 볕 같은 따스함이 감도는 을지로의 명소가 됐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건 시간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골목길만의 색채와 온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 함몰돼 살다 보면 감각 자체를 잊기 쉽지요. 사람들이 커피의 맛과 향을, 창가에 스미는 햇살과 함께 천천히, 그리고 사려 깊게 느꼈으면 했어요.”
을지로 뒷골목은 이제 그가 바라던 모든 것들로 채워져 있다. 과거를 답습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젊은이들, 초콜릿에 과일이 얹어진 커피향, 귀 기울여 오래 듣고픈 음악, 마음의 여백을 채우는 대화. 비로소 을지로가 그의 기억 속 청춘의 골목처럼 살아 숨 쉰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와 목공소, 커피집을 오가는 바쁜 일상 속, 그는 지금도 스스로 로스팅을 한다. 커피향이 좋아 커피집을 차렸듯 로스팅하는 감각을 느끼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편의와 편리 뒤로 사라지는 가치와 전통도 참 많고요. 그런 것들을 지키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샤워에 쓴 물을 다시 변기에 사용하고, 손님들이 사용하지 않은 냅킨을 주방 청소에 사용하는 것처럼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물, 나무 같은 지구의 자원,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지는 억겁의 시간이 아까워서입니다. 보다 오랜 세월이 축적돼 일궈낸 결정체를 지킬 수 있다면, 저는 백번이라도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택할 겁니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다 끓은 물이 담긴 주전자를 잡고 25도쯤 기울였다. 뜨거운 물이 곱게 분쇄된 커피가루를 적시며 일정한 리듬을 타고 맑은 갈색 커피액이 돼 투명한 유리병 안에 떨어졌다. 수작업으로 하는 드립이었다. 기계와 전기가 온갖 편의를 대신하게 된 세상, 그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균열과 틈새를 메우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던 그의 얼굴에 커피향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