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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순탁의 셋리스트삶의 역설을 매혹적으로 품어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2022년 02월호


무려 11장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쭉 돌이켜 봐도 한 밴드가 11장의 음반을 발표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조건을 하나 더 달아볼까. 단 한 번의 멤버 교체도 없이 11장의 결과물을 산파한 사례는 정말이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이 밴드는 존재 자체로 위대한 예외가 된다. 바로 3인조 밴드 ‘자우림’이다. 

원래는 4인조였다. 그러던 중 2017년 드러머 구태훈이 개인 사정으로 탈퇴했음에도 멤버를 충원하지 않았다. 자우림의 시작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홍대 인디 신이었다. 데뷔 때부터 이미 유명했던 김윤아의 개성 넘치는 보컬에 탁월한 연주 호흡이 더해지면서 1집부터 히트곡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다. 바로 저 유명한 곡 ‘Hey, Hey, Hey’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1997년 영화 <꽃을 든 남자>에 삽입된 이 곡이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면, 어쩌면 자우림이라는 전설이 출발하지 못했거나 그 출발이 꽤나 늦어졌을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1998년 1월 군대에 가서 2000년 3월에 제대했다. 갑자기 군대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군대에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건 군법 위반이었다. 우리 부대의 경우, 상병 5호봉 정도는 돼야 ‘암묵적 합의’하에 몰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1999년 가을, 나는 드디어 상병 5호봉이 됐고, 그간 못 들었던 음악을 마구 찾아 틈이 날 때마다 듣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우림의 2집 <연인(戀人)>이었다. 

놀라웠다. ‘Hey, Hey, Hey’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밝고, 사랑스러운 자우림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거기에는 무겁게 가라앉은 기타 리프와 서늘한 분위기의 보컬이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효과음을 사용한 도입부는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랬다. 뭐로 보나 ‘미안해 널 미워해’는 ‘Hey, Hey, Hey’와 대척점에 위치한 노래였다. 무엇보다 자우림 최고의 기타 리프가 담겨 있는 곡이기도 하다. 

‘Hey, Hey, Hey’와 ‘미안해 널 미워해’의 자우림은 같은 자우림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하하쏭’을 부른 자우림과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부른 자우림은 다른 자우림이 아니다. 하긴 그들은 이미 1집 의 수록곡 ‘일탈’에서 이 지리멸렬한 삶을 탈출할 충격 요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모두는 다른 자우림이 아니다. 다 같은 자우림이다. 

가장 최근 음반인 11집 <영원한 사랑>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먼저 타이틀곡인 ‘영원한 사랑’은 사랑을 찬미하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깝다. ‘말로 하는 약속 따윈 허망하니 지금 당장 내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을 믿지 못하는 자의 간절한 외침인 셈이다. 앨범의 첫 곡 ‘FADE AWAY’ 역시 이와 비슷한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사랑한다 말해 줘,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어떤 외로움들은 혼자 삭이기 힘드니까”라는 가사를 보라. 

그러면서도 자우림은 ‘잎새에 적은 노래’에서 감사의 마음을 읊조리고, ‘디어마이올드프렌드’를 통해서는 우정의 귀함을 예찬한다. 그리하여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에 이르러서는 ‘FADE AWAY’, ‘영원한 사랑’과 역설적으로 조응한다. 훌륭한 예술가가 대개 이렇다. 그들은 삶의 역설을 매혹적으로 그 안에 품어낸다. 순간에 집착하듯 매달리는 와중에 영원을 응시한다. 그 사이의 공간에서 예술을 길어낸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자우림의 11집이 바로 이런 음반이다. 아니, 기실 자우림의 역사 전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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