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참뜻을 오해해 온 속담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였다. 20대 중반까지 나는 이 속담을 “사람이 밥 먹을 때는 개도 사람을 안 건드린다”는 의미로 잘못 알고 있었다. 주어가 사람인지 개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어찌됐거나 ‘먹을 때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는 매한가지여서, 딱히 이 착각이 사람들 앞에 드러날 일이 없는 바람에 일찍이 수정할 기회도 없었다. 사람만 개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 개도 사람을 건드릴 수 있다는, 그러니까 개를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기지 않고 인간과 능동성을 주고받는 동등한 존재로서 바라본 21세기적 마인드의 현현이었다고 주장하고(우겨보고) 싶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쓴 저널리스트이자 연구원인 버네사 우즈와 과학자 브라이언 헤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이렇게까지 우긴다고?). 그들이 이 책에서 핵심으로 내세우는 ‘자기가축화’는 개의 기원(개는 어떻게 지금처럼 가축화가 됐는지의 문제)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의 한 축을 이루는 가설이다. 기존에 유력하게 받아들여진 가설이 ‘인간이 사냥이나 경비에 도움이 되는 늑대를 지속적으로 입양하고 선별 교배함으로써 개량해 개라는 새로운 종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라면, ‘자기가축화’는 ‘인간이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먹고 남은 먹을거리가 쓰레기로 버려지면서 고생스럽게 사냥을 하는 것보다 인간 가까이에 살면서 이런 잉여생산물을 먹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일련의 늑대집단이 야생을 포기하고 스스로 가축이 됐다’는 것이다.
사람이 개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개가 사람과 살기로 선택한 것이고, ‘가장 다정한 늑대들’이 스스로를 가축화했다는 것(역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 선택의 결과로 현재 늑대는 세계 곳곳에서 멸종 위기를 맞고 있지만, 개는 개체 수가 수천만에 이르도록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생존한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가 됐다.
여기서 출발한 헤어와 우즈는 보노보를 경유해(이 다정의 최종보스 같은 생물은 프란스 드 발의 『내 안의 유인원』에서 자세히 만날 수 있다) 이 이론을 더 밀고 나가 사람도 자기가축화한 종이라는 데에 이른다. 다른 사람 종들이 멸종하는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만이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친화력을 꼽은 그들은,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과 진화의 과정들을 차근차근 살펴가며, 인류가 이렇게 지구에서 주도권을 쥐고 서로 협력하며 초강력 인지능력을 지닌 고도의 지성적 존재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채 다정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본성을 길들이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우리 내면에 최악의 속성의 씨앗을 뿌린 것도 동일한 뇌 부위에서 모두 일어나는 일이다. -p.195~196
또한 이 책은 바로 그 (내집단을 향한) 다정 때문에 인간이 (외집단에 속한) 타인을 얼마나 쉽게 비인간화하며 잔인하게 공격할 수 있는지를 다루며 나름의 해법도 제시한다. 대선 후폭풍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내·외를 구분 짓고 다정과 혐오의 양극단을 오가고 있는 시기에 이 책을 다시 손에 든 이유다. 편협하지 않은 다정의 힘을 다시 한번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