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는 “Let them eat cake!”, 직역으로는 “그들에게 케이크를 먹게 해요!” 그리고 통용되는 한국어 의역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망언으로 지금까지도 서민경제 물정을 모르는 권력자의 상징이 되는 말이다.
이 말을 두고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긴 하다.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는 상대적으로 검소한 편이었다는 설, 전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다는 설, 애초에 이런 말을 한 것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었다는 설 등 이 말의 억울함을 푸는 수많은 설이 있지만 어쩌겠나, 말 자체가 힘을 얻어버렸다. 그녀가 단두대에서 처형된 이후로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9천km가량 떨어진 이곳 동양에서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이 그대로 유통되고 있다.
원래 뜻으로 돌아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서민들에게 빵 대신 주라고 했다는 것은 케이크가 아닌 브리오슈다. 영어로 번역되며, 그리고 동양권으로 넘어와 번역되며 케이크로 쭉 의역된 것은 브리오슈가 이 말이 번역되던 당시 프랑스어에서만 쉽게 이해되는 문화 개념이었던 탓일 테다. 어느 번역가인지 기지를 잘 발휘했다. 브리오슈의 본질이 케이크와 맞닿아 있으니까.
가랑비에 어깨 젖듯 스며든 구움과자 사랑
브리오슈는 버터, 설탕 가득한 빵 종류다. 거칠고 딱딱한 당시의 ‘빵’에 비해 무척 부드럽고 맛도 풍부해 귀족들이나 즐겨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통곡물 식빵과 버터 식빵을 떠올리면 대략 비슷한 차이다. 버터와 설탕. 귀족도, 서민도 그 풍만함을 똑같이 열망했기에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킨 한 마디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말의 진위나 출처와는 상관없이.
진위와 관계없이, 요즘 제과제빵 업계에서는 이 말이 엄청난 팩트다. 말 그대로 “빵 대신 브리오슈를 구우면 되지!”로 번역할 만하다. 일본식 조리빵, 식사빵, 사워도우 빵 등 배를 채우는 용도의 빵 대신 구움과자의 인기가 한층 높아졌다. 버터와 설탕을 아낌없이 쓴 작은 과자만 굽는 소규모 제과점들이 동네마다 생겨나고 인기를 얻고 있다. 크루아상부터 피낭시에, 마들렌, 카늘레, 다쿠아즈, 파운드케이크, 쿠키와 스콘과 머핀 그리고 작은 케이크인 프티갸토까지. 흔히 디저트로 통칭되는 제과 부문이 대세다.
나 역시 디저트는 낯설고 달아서 즐기지 않는 것이었다. 디저트라는 것이 마냥 달고 느끼하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인식이 좋지 않았다. 기술과 재료의 문제가 분명 있었다. 찾는 사람이 적으니 수준을 높이기 힘들었다. 닭과 달걀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나 이제는 찾는 사람도 많고 수준도 무척 높아졌다. 기술도, 재료도 부족함이 없으니 디저트는 그 조그마한 한 조각 안에 달고, 짜고, 시고, 풍부하고, 향도 섬세한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이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서울 서초구의 ‘메종조’는 내 식생활에서 10분의 1 정도를 점유하는 델리숍이다. 조우람 셰프의 햄과 소시지, 테린 등 샤퀴트리와 함께, 파트너인 이은희 셰프의 빵과 과자 그리고 프랑스 가정에서 먹을 법한 요리와 샌드위치가 있다. 이은희 셰프의 피낭시에가 내 디저트 취향의 기초를 다졌다. 버터와 달걀, 설탕이 듬뿍 들어간 금괴 모양의 과자다. 윗면에 비정제 설탕을 붙여 한 입 먹을 때마다 파삭파삭한 설탕 알갱이가 산산이 부서지며 입안으로 녹아든다. 풍성한 버터 향에 부드러운 속의 질감까지, 나는 이 과자를 하나는 바로 먹고 하나는 다음날 먹고, 나머지는 얼려뒀다가 에어프라이어로 부활시켜 또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몇 년 전 단것을 먹지 못하는 애주가였을 때 메종조가 개업해, 가랑비에 어깨 젖듯이 이 피낭시에로 단것 입맛을 길들였다.
피낭시에로 버터와 설탕에 길이 들자 봇물 터지듯이 다른 구움과자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일단 메종조에서는 오렌지 향 새콤달콤한 코팅이 발려 있는 작은 케이크 ‘갸토 오랑주’, 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운 종 모양 과자 ‘카늘레’를 잊지 않고 챙긴다. 계절마다 등장하고 사라지는 페이스트리 종류도 열심히 챙겨 먹는다. 요즘은 제주 감귤과 사과가 들어간 메뉴가 있다.
메종조의 대척점에 ‘재인’이 있다. 재인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골목에 있는 디저트 바다. 메종조가 클래식한 레시피를 고집하는 쪽이라면 재인은 우도 땅콩이나 쑥, 유자, 밤꿀, 청양고추, 대추 등 한국 토착 재료도 과감하게 시도하는 레시피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파티스리(pâtisserie)다. 스포이트에 밤꿀을 넣어 먹을 때 꿀을 쭉 짜 넣는 밤꿀 마들렌, 바닐라 크림이 듬뿍 샌드된 바닐라 마들렌, 청양고추의 메케한 향이 뒤에 남는 청양 피낭시에, 후추 향이 두툼하게 다가오는 후추 피낭시에 등 재미있는 시도가 많아 한 입마다 입이 즐겁다. 다세대 주택 2층을 개조한 매장 한쪽은 큰 창으로 골목 풍경을 볼 수 있는 바도 마련돼 있어 (웨이팅을 버틸 수 있다면) 한가한 오후를 보내기에도 좋다. 흔한 조합인 커피를 배제하고 칵테일 외에도 동양권의 차와 와인(특히 스파클링!), 위스키 등 다양한 음료와 함께 디저트를 색다르게 즐길 수 있어 내 마음속 사랑방으로 점찍어 뒀다.
케이크, 미학적 쾌감을 선사하다
또 한 가지 디저트 열풍의 거대한 핵이 남았다. 프티갸토다. 갸토(gateau)가 케이크, 프티(petit)가 작다는 뜻이니 그 자체로 작은 케이크를 말한다. 큰 한 덩이에서 잘라낸 조각 케이크의 서운함 없이, 손바닥만 한 한 판이 모두 내 것인 1인 최적화 케이크다. 크기가 작아지다 보니 홀 케이크에서 구현할 수 없는 더 섬세하고 오묘한 조합까지 재료 매칭과 과감한 디자인도 가능해 조각 케이크와는 같지만 다른 세계관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왜곡된 생각으로, 케이크의 미덕은 무조건 아름다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내가 경험해 본 곳 중에선 ‘세드라’다. 서울 강남구 복잡한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한 파티스리다. 세드라(Cédrat)라는 말부터가 한국엔 없는 프랑스의 시트러스 과일 이름이다. 이곳 셰프가 가진 디저트 세계관이 얼마나 재료를 중시하는지 유추 가능한 상호다.
세드라 최규성 오너 셰프는 피에르 에르메, 카페 디올 등 거쳐온 이름만으로도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이제 변두리 작은 골목에까지, 그리고 전국 택배가 되는 수많은 제과 전문점이 생겨났다. 이 정도로 발달한 파티스리 천국에서는 굳이 디저트의 맛이나 기술, 재료의 수준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어지간한 곳은 모두 최상급으로 상향평준화가 돼 있으니까. 세드라 역시 대단한 기술로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다른 곳을 넘어서는 ‘한 끗’이 나는 그 아름다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좀 이름난 파티스리의 프티갸토는 갤러리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는 것 못지않은 미학적 쾌감을 선사한다. 미술 사조가 각기 다른 만큼, 파티스리 각각의 개성이 다르다. 세드라가 내게 보여주는 프티갸토의 미학은 어딘가 무척이나 서정적이고 어느 한 편으로는 목가적이고, 그러면서도 여백의 미를 겸비한 조형의 미감을 완벽하게 갖춘 것이다. 새하얀 머랭 위에 새빨간 백년초, 라임, 파인애플 콩포트를 올리고 그 위로 돔 형태의 화이트초콜릿 생크림 지붕을 덮은 ‘백년초 파블로바’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철마다 새로운 매력을 뽐내는 프티갸토들을 보고 있으면 밥 대신 디저트를 먹어도 되지 않나 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자제하지 못하고 잔뜩 사다 놓은 구움과자와 하나만 고르지 못하게 되는 프티갸토 때문에 나의 식생활은 위협 아닌 위협에 처해 있다. 출출하다 싶을 때 하나씩 꺼내 먹는 피낭시에 때문에, 오늘까지 먹지 않으면 맛이 떨어질 프티갸토를 제때 맛있게 먹기 위해, 끼니를 건너뛰는 데에 주저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빵이 없는 사람에게 케이크를 권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케이크를 먹고 싶은 사람이 빵을 마다하는 것은 죄가 없다. 그러니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