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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라이프 #키워드3천 원짜리 김치찌개 레시피는 정성에 마음 한 스푼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04월호


정릉천과 개울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상가건물 2층에 식당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청년밥상문간’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찌개가 오가고 정이 오가는 공간인 식당에서 이웃과 시선을 맞추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픈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를 만났다. 
 

비극적 뉴스 접하고 열게 된 청년식당  

‘N포세대’, ‘프로포기러’,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년’. 우리 시대 청년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이름처럼 인생에서 가장 푸르른(靑) 시절(年)을 보내야 할 청년들이 학업난과 취업난, 경제난 등 끝없는 고통의 터널에 들어선 지 오래다. 현재는 버겁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막다른 코너에 몰린 청춘들은 꿈을 지키기보다 포기하는 게 견디기 쉬울 것 같아 차라리 포기를 택한다. 이런 청년들의 모습이 짠해져서일까.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편하게 먹고 가라며 문을 열어준 고마운 식당이 있다. 바로 ‘청년밥상문간’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위치한 이 식당은 청년들이 편안하게 식사하기를 바라는 평범한 이웃이자 한 어른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천주교 신부다. 글라렛 선교 수도회 소속인 이문수 신부는 낮에는 신부, 밤에는 김치찌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신부가 선교나 열심히 할 일이지 왜 밥집을 차렸느냐고 묻습니다. 사는 게 버거운 청년들을 위해 따끈한 밥을 지어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청년밥상문간을 차리게 된 배경에는 한 비극적인 뉴스가 있다. “2015년 여름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지병과 굶주림으로 고독사한 일이 있었지요. 그 소식을 듣고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청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 뉴스를 접한 한 수녀님이 청년들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평소 청년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문수 신부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주변 신부님들의 반대를 예상했지만 기우였다. 의견을 구한 신부님들은 하나같이 좋은 생각이라며 그에게 뜻을 모아줬다. 청년의 좌절을 보듬어주고픈 이 신부의 따뜻한 마음과 ‘그래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만나면서 청년의, 신부에 의한, 그리고 청년을 위한 식당 문이 열리게 됐다. 

청년밥상문간은 2017년 12월에 개업해 올해로 만 4년이 조금 넘은 식당이다. 밥을 먹고 힘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식당은 팍팍한 세상 속에서 용기와 위로를 보내고 있다. 이곳의 메뉴는 딱 하나, 김치찌개뿐이다. 단돈 3천 원이면 청년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3천 원짜리지만 김치는 물론이고, 고기와 두부 등 재료가 푸짐하다. 밥은 무한 리필이고, 입가심으로 요구르트도 제공된다. 개업 직후는 인근의 국민대 학생들과 학원 수업을 마친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찾더니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되면서 찾는 이가 급증했다. “우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간 대학생이 ‘대나무숲’에 글을 올렸던 모양입니다. 단돈 3천 원으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김치찌개라고 말이죠. 그게 진짜냐며 식당에 와 확인을 하는 손님이 늘어나 문전성시를 이룬 날도 많아요. SNS의 위력이 그렇게 엄청난 줄 몰랐습니다.” 

식당 개업과 함께 이 신부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신부님 소리를 듣다가 사장님 소리를 듣는 게 어색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식당 운영 노하우를 익혀 나갈 수 있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던 이 신부는 식당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신촌 이화여대길에 2호점을 열었다. 성안나재단에서 장소를 무상 제공했다. 인근 대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좋은 일을 한다’는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도 이어졌다. 남는 게 없는 장사로 적자를 볼까 봐 후원의 손길도 늘고 있다. 식당 운영에 필요한 물품은 물론, 쌀을 계속 보내주는 곳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청년밥상문간을 ‘돈쭐 내줄 방법’이 소개되는 등 청년들 못지않게 중장년층의 지지도 뜨겁다. “레시피요? 특별한 레시피는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부담 없는 한 끼 식사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모든 식당이 다 그렇겠지만, 조리 실장님들이 다 엄마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계세요. 기본 김치찌개 레시피에 정성 한 스푼, 마음 한 스푼 더 추가했습니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지친 청춘의 어깨를 토닥이다 


김치찌개의 생명은 ‘김치’다. 재작년에는 김치를 직접 담갔고, 지난해에는 김장을 한 많은 사람이 곳곳에서 김치를 보내줬다. 광장시장에서 김치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와 보람에, 앞으로는 청년들과 봉사자를 모아 재미있게 김치를 담그는 이벤트도 구상하고 있다. 

사람들은 청년밥상문간이 만년 적자를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식당을 운영하면서 이 신부가 본 ‘마진’은 분명히 있다. 바로 청년들에 대한 믿음이자 사랑이다. 그는 식당 운영은 물론, 청년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청년희망로드 프로그램을 진행해 청년들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순방했고, 지난해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함께 걸으며 청년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이 외에도 청년의 삶과 문화를 다루는 달빛영화제를 비롯해 식당 옆 청년카페문간에서 도서 무상 대출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다. 

“누군가 벼랑 끝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는 묻는다. 물음에 대한 답은 명료하다. 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한 청년의 죽음이 그의 마음에 오랜 공명을 만들었던 기억, 그리고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신부가 식당을 차리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기록을 담아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을 펴냈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은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안이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그는 오늘도 열심히 지친 청춘의 어깨를 토닥여 삶의 온도를 끓어오르게 하는 중이다. 

따스한 볕을 한껏 들이고 싶어 구했다는 식당 창틈으로 계절이, 그리고 그 계절이 완성한 한 폭의 풍경화가 스민다. 밥을 먹고 다시 내일을 향해 발을 디딜 힘을 얻은 청년이 자유게시판이나 다름없는 포스트잇 트리에 메모를 남긴다. ‘신부님, 이곳에 문간을 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희망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리고 살맛 나는 세상도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한 줄짜리 감사의 메모를 전할 용기,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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