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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창기의 영화상담실혐오를 극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기까지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2년 04월호


2018년 개봉한 영화 <그린 북(Green Book)>은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서로를 혐오하던 두 사람이 친구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때와 장소는 인종차별이 심하던 1960년대 초의 미국이다. 인종차별이 덜한 북부에 사는 지식인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흑인 돈 셜리 박사는 아직도 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순회공연을 하게 된다. 그는 혹시 모를 폭력적 사고를 대비해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무식하고 거친 백인 토니를 고용한다. 흑인을 혐오하지만 돈이 궁한 토니는 높은 보수에 끌려 구시렁거리면서도 셜리 박사와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 남부에서 흑인 셜리 박사를 차별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과정을 함께 해결해 나가며 둘은 서로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벽을 서서히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백인 토니가 흑인을 혐오했던 만큼이나 지식과 교양을 중요시하는 셜리 박사는 무지하고 미개한 ‘백색 쓰레기’ 토니를 혐오했었다. 그렇게 서로를 혐오하던 두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힘을 합하며 ‘우리’가 된 것이다.

사실 혐오(嫌惡)는 윤리적으로 나쁜 감정이 아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여섯 가지 감정(기쁨, 슬픔, 공포, 혐오, 분노, 놀람) 중 하나이며, 생존을 위한 방어적 태도를 갖출 때 가장 먼저 발동되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상한 음식을 보거나 불쾌한 냄새 혹은 촉감을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 혐오감이다. 경험을 통해 그런 것들이 우리 건강에 해롭다고 뇌에서 보내는 신호가 혐오감인 것이다.

불결하거나 악취를 풍기거나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사람을 볼 때도, 사체나 시체를 볼 때도 우린 혐오감을 느낀다. 감염과 위험을 피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우리와 다른 종족의 사람이나 다른 언어나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게도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공격에 대비하라는 신호다. 이제는 외부인들과의 접촉이 많아지며 이런 혐오감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집단적 위기를 느낄 때 외부인에 대한 혐오감은 다시 증가되곤 한다. 비윤리적 언행, 무례하거나 무지한 언행을 볼 때도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혐오감의 팔은 안으로 굽어서 나나 내 편들에게는 잘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아직 그렇게 윤리적인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에.

혐오가 나쁘거나 가해적인 감정이 되는 것은 혐오에 분노나 불안이 더해질 때다. 분노와 불안과 혐오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돈하거나, 분노와 불안에 의해 혐오가 오작동될 때인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혐오했다. 그런데 그 혐오감은 사실 이 무섭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누군가를 향한 분노였다. 그 상황을 책임질 대상이 애매하니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혐오감은 사건의 위험성이 높을수록 더 커진다.

우리는 중세가 아닌 2022년에 살고 있다. 병의 원인과 예방 및 치료의 불찰에 분노해야지, 객관적으로 감염병과 상관없는 엉뚱한 곳을 향해 눈먼 공격을 하며 분풀이를 하면 안 된다. 두렵고 화가 나지만, 그 원인이 아닌 사람들을 속죄양으로 만들어 혐오하는 것은 원시적인 본성의 표출일 뿐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혐오감이 아니라 분노다.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이념의 논쟁이 아닌 정치적 혐오도 사실 혐오감이 아닌 분노의 왜곡된 표출이다. 우리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들이 어찌 전적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온 남녀노소의 사회 구성원들이겠는가?

갈등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찾아내고, 그 원인을 타파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혐오감을 조장해 힘을 얻는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노력도. 

혐오의 첫 번째 단계는 편견이고, 그다음은 차별, 그리고 폭력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겪어왔고, 아직도 겪고 있다. 더 되풀이되면 안 된다. 오작동하는 혐오감을 가라앉히고 편견을 버릴 수 있으려면 공존하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아 ‘우리’라는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돈과 토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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