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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별의 씨앗초등교원 성별 비율에 대한 착시효과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2년 04월호


착시란 말 그대로 현상을 왜곡하거나 다르게 혹은 반대로 보는 것인데 대부분의 차별과 혐오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당화된다. 나는 예전에 한국의 폐쇄적 난민 수용 정서를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한국에서 살겠다는 난민들은 길거리에서 코도 풀지 말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건 인간의 생리현상으로 이해되지 않고 특정 인종의 교양 부족과 특정 종교의 내재된 폭력성이 돌출된 것이라고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니 말이다. 

대표적인 착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거다. ‘가난해서’ 나타난 결과를 ‘저러니’ 가난하다는 식으로 보는 것이다. 노숙자의 일탈을 보면서 혀를 차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거주할 집이 없다는 어마어마한 원인을 무시하면, 술 마시는 노숙자는 그저 노력하지 않는 인간에 불과하다. 여기에 길들여지면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는 사라지고 개인적 책임만이 도드라진다. 예외적인 극복사례야 등장하겠지만, 전체적인 수치가 달라지는 유의미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최근 “가난은 정신병이다”라고 말하는 광고를 유튜브에서 봤는데, 저 과감한 문장이 가능한 이유는 ‘가난한 인간들은 다 그럴 이유가 있다’는 말들이 차고 넘쳐서다. 

젠더 이슈가 지난 몇 달 내내 시끄러웠다. 대통령 선거라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토론의 수위가 굉장히 정교할 것 같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실제 오간 정치인들의 대화와 공약들은 많이 거칠었다. 차별이 있다는 쪽과 차별이 없다는 쪽이 어찌 무탈하게 의견을 주고받겠는가. 선거가 끝난 마당에 하나하나 따질 생각은 없는데, 앞으로 이런 폭풍이 남긴 착시효과 때문에 논란은 계속될 거다. 구조의 문제를 지나치게 협소화하면, 여성의 권리 주장은 단번에 특혜만 우기는 것에 불과해진다. 이 특혜란 말만 강조하다 보면, 반대편에는 역차별받는 집단이 실존 유무와 상관없이 견고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여성이란 이유로 어릴 때부터 차별받았다는 이야기에 ‘남자아이들은 학교에서 우유 박스를 들어야 했다’는 게 대등한 사례처럼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라면 과거보다는 평등해진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들은 충분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이해하겠지만 저 논리가 공론장 위를 부유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서울 공립초 신임 교사, 남자는 10.6%.’ 2월의 어느 날 우연히 들춘 신문에서 본 기사 제목이다. 지난해보다 2.6%p 낮아졌다는 부연 설명도 강조돼 있다. “신규 초등학교 교사 중 남성은 전체 10명 중 1명꼴에 그친 것”이라는 친절한 비교가 이어진다. 누가 읽더라도 초등학교에 남자 교사가 부족한 걸 걱정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 통계적 사실은 지금껏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주장은 틀렸다’와 ‘오히려 남성이 불이익을 당하는 증거’라면서 꽤나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그런 와중에 저런 기사는 잘못된 주장을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증해 주는 거나 다름없다.

초등교원 중 여성 비율이 높은 건 사회라는 덩어리에 반응한 개인의 결과이지 무엇의 원인이 아니다. 여전히 취업시장에서는 남성성을 전제한 성향을 자기소개서 등으로 평가하려 하고, 직장에서는 편견을 앞세워 기회를 봉쇄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줄었을 뿐 여전하다. 그래서 지속적 안정성이란 기준에 부합한 특정한 직업에 특정 성별이 더 몰리게 된다. 이는 스스로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 이전에 “공부를 잘하니 교사가 어울려”라는 주변의 조언이 어릴 때부터 부단히 있었다. 즉 초등교원에 여성이 몰리는 건 ‘여성이 배제되는’ 차별의 결과이지, ‘남성교원이 부족한’ 현상을 설명하는 원인과 무관하다. 그러니 ‘여초’라는 말을 교묘히 포장해 마치 여성이 겪는 불평등은 사라졌다고 오용하면서 ‘역차별은 있다’고 말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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