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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인도 대서사시와 힌두트바
박영선 KOTRA 인도 콜카타무역관장 2022년 04월호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는 흔히 호메르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비견된다. 개인적 원한과 분란이 거대한 전쟁으로 치달은 점에서 『마하바라타』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와 유사하고 납치된 아내를 구하기 위한 람의 험난한 여정을 다룬 『라마야나』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비슷하다.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는 인도 수천 년 역사에 위키피디아처럼 내용이 첨삭돼 발전해 온 대서사시로서 인도인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서양인들은 호메르스의 서사시를 문학작품의 하나로 읽고 감상하지만 인도인들은 아직까지 두 대서사시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을 신으로 섬기고 있다. 인도인들이 섬기는 신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현대 인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신은 『라마야나』의 주인공인 람이다. 람은 이상적인 통치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문무를 겸비한 능력자 그리고 선정을 베푼 어진 왕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서사시 소재 TV 드라마를 정치인들이 대중 선동에 활용,
힌두 우선주의 득세 속 인도인민당 정권 들어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인도 대중에게 더욱 알려지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국영 TV채널에서 장편 드라마로 방영하면서부터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이면 많은 인도인이 TV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화면에 등장하는 신들에게 절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로 치부할 수 있었던 드라마가 비극의 시작이 된 것은 정치인들이 종교를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부터다.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아요디아라는 지역에는 오래된 이슬람 사원이 있다. 이곳은 원래 람이 태어난 장소로, 람 사원이 서 있던 것을 이슬람 정복자들이 허물고 이슬람 사원을 건설한 것이라는 설이 존재했다. 힌두 중심주의에 심취한 정치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군중이 이 사원에 난입해 건물을 무너뜨리는 역사적 사건이 1992년에 벌어졌다. 

이슬람 사원의 붕괴가 기폭제가 돼 힌두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사상 힌두트바(Hindutva)는 인도의 정치·사회에 중요한 화두가 됐으며 2002년에는 구자라트주에서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살이 발생했다. 수천 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군중들은 무슬림들의 거주지 주소를 확보하고 있었고, 경찰들은 이들을 말리기보다는 오히려 방조해 권력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당시 구자라트주는 모디라는 인물이 주 총리로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후 주 총리 연임에 성공했으며, 인도 전역에서 힌두트바가 득세하는 가운데 2014년 그가 이끄는 정당 인도인민당(BJP)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인도의 총리가 됐다.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어떤 인도를 건설할 것인지가 매우 불분명했다. 윈스턴 처칠은 “인도는 적도와 마찬가지로 지리적 표현일 뿐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없다”고 폄하했다. 간디는 인도가 람이 지배하는 왕국과 같은 이상 국가가 되길 꿈꿨지만 그의 후계자인 네루는 서양식 교육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인도는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세속주의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고 믿었다. 천민 출신으로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암베드카는 카스트제도 폐지, 남녀차별 폐지, 종교적 자유 보장 등을 담은 모범적 헌법을 만들어 국가 건설의 토대를 구축했다. 인도는 네루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 등 네루 가문의 장기집권을 통해 세속주의라는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켰으나 현재 힌두트바의 득세로 세속주의의 정치이념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마하바라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로 알려져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하바라타』에 있고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세상에도 없다’라는 문구와 같이 『마하바라타』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복잡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라마야나』는 주인공 람에 초점을 둔 이야기로 구성이 단순하고, 람이 마왕 라바나를 물리치고 아내 시타를 구출하는 선과 악의 대결 이야기다. 

힌두교에는 창조의 신 브라마, 운행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 등 3대 주신이 있다. 이 중 비슈누는 세상이 혼돈에 빠질 때 아바타로 현신하는데, 바로 『라마야나』의 람, 『마하바라타』의 크리슈나가 비슈누의 아바타에 해당한다. 현대 인도사회에서 『라마야나』의 람이 『마하바라타』의 크리슈나보다 더 숭배를 받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람은 영웅 숭배 성향이 강한 인도인들이 섬기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람이 통치하던 시절은 중국의 요순시절같이 인도 고대 태평성대시절을 상징한다. 신의 현신으로서 강력한 힘을 갖춘 람은 불사의 존재 라바나를 물리쳐 지난 수백 년간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인도가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상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즉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자부심을 끌어올릴 절대자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크리슈나는 많은 인도인의 사랑을 받는 신이지만 젊은 시절 피리를 불며 마을 처자들을 유혹하던 자유로운 영혼이고, 『마하바라타』에서 벌어지는 대전투에서는 왕이 아니라 킹메이커로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을 벌여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영웅의 풍모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라마야나』의 람이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인물은 아니다. 라바나에게 납치됐던 아내 시타를 구해 왕국에 돌아온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는 시타가 라바나에게 정절을 잃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백성들을 달래고자 람은 시타를 내쳤고, 시타는 결국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자결한다. 람은 또한 카스트 신분이 낮은 사람이 브라만 계급만 사용할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고 수행을 하자 그의 목을 베어버린다. 즉 람은 인도사회에 만연한 남녀차별, 신분차별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이라도 결점이 많고 악인이라도 의로움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마하바라타』 이야기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다르마, 즉 올바른 삶의 법도는 미묘하며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중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카르나는 원래 왕국의 적장자이지만 마부의 아들로 삶을 살면서 차별을 받았는데 나중에 자신의 신분이 밝혀진 후 친형제들인 판다바 5형제와 함께하기보다는 낮은 신분이었던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친구로 대한 두료다나에게 충성해 전쟁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또한 여주인공 드라우파디는 판다바 5형제를 모두 남편으로 맞아 여인천하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마하바라타』는 신분차별의 부당성, 여성의 주도성 등 현대 인도사회에서도 아직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힌두트바, 인도를 획일화하고 소수자 차별하는 역효과 낳기도 

힌두 폭도들에 의해 무너졌던 아요디야의 이슬람사원은 오랫동안 방치돼 오다 최근 대법원 판결을 통해 그곳에 람 사원을 건설하는 것이 승인됐다. 인도 각지에서는 사원 건설을 위한 대대적인 모금운동이 벌어졌으며 유권자 표를 의식하는 여야 정치권 모두 이 사원 건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힌두트바가 인도인들의 긍지를 높일 수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종교, 문화, 인종의 인도를 획일화하고 소수자를 차별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BJP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인도에서는 무슬림, 기독교인 등 비힌두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급증했다. 정치인들은 이슬람과 서양 제국주의의 인도 침략 역사를 종교와 연관 짓고 있는데, 실제로는 인도의 무슬림, 기독교인 다수가 과거 힌두교의 천민신분으로 지내다가 이를 탈피하고자 타 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힌두교 역시 현대 힌두트바가 지향하는 바와 같이 하나의 신, 하나의 경전, 하나의 교리로 단순화할 수 없는 종교다. 인도는 람신뿐만 아니라 크리슈나, 시바, 가네쉬, 락슈미 그리고 칼리의 나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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