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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플때, 힐링푸드
‘맛의 거리’에서 배운 것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탐식생활』 저자, 콘텐츠 에이전시 ‘포르테’ 대표 2022년 05월호


세상엔 네 범주의 식당이 있다. 1범주는 동네 식당. 슬리퍼 신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사무실에서 5~10분 이상 걷지 않는 거리다. 때로 별미 메뉴도 있겠지만 주로 백반집. 제육볶음인가 고등어자반구이인가 돈가스인가 정도의 선택지가 있다. 어설프고 맛이 별로 좋지 않아도 상관없는 낮은 기대치의 식당이다. 2범주는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나 자동차 등 이동 수단에 기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사람과도 공평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번화가 위주이고, 모처럼 이동하는 만큼의 보상이 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3범주는 대중교통의 종류가 바뀐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야 할 때도 있다. 지방 여행을 할 때 가는 지역 식당이다. 반대로 제철 식재료를 만끽하기 위해 지역과 식당을 찍어놓고 가는 미식 여행일 때도 잦다.

4범주는 해외에 있는 식당이다. 아예 다른 음식 문화권 안에서 그들이 어떤 음식을 발달시켰고, 무엇을 먹고사는지 관찰하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팬데믹으로 내 안의 ‘쇄국정책’이 시작되기 전, 나는 평소 2범주 식당을 즐겨 찾으며 호시탐탐 4범주 음식 경험을 쌓는 쪽이었다. 직장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는 짧게는 5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어딘가로 훌쩍 날아가곤 했다. 

식당이 여행의 주요한 목적이 되다

4범주도 둘로 나뉜다. 『미쉐린 가이드』의 최고 찬사인 3스타 선정 기준은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이다. 오로지 그 식당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좋을 만치 대단하다는 의미다. 서울은 지난해 11월에 발간된 2022년 판에서도 신라호텔 ‘라연’과 광주요그룹의 ‘가온’이 여전히 별 셋을 지켰다. 

로맨틱하지 않은가. 거대한 지구 어딘가에서 오로지 라연이나 가온이 선보이는 한식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와도 후회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식당 자체가 여행의 주요한 목적이 될 수 있다는 먹보들의 낭만주의를 지지한다. 나 역시 뉴욕에 갔을 때 3스타 레스토랑 예약을 중요도 높은 일정으로 미리부터 잡아놨고, 층고가 무척 높은 그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은 시간, 비용, 여정 모든 면에서 티끌 하나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았다. 가온은 가보지 못했지만 라연 역시 군더더기 없는 완성형의 미식 경험으로 남았다. 다시금 몸도 마음도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여행할 날이 온다면 또다시 ‘목적이 되는’ 레스토랑을 중요한 일정으로 잡을 것이다.

4범주의 또 다른 한 축 또한 귀중하다. 꼭 거창한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만나는 맛은 하나같이 놀라운 경험이 된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내려 먹는 첫 끼의 각별함을 기억하시는지. 내 몸에 밴 된장, 간장, 고추장 체취 대신 그곳의 버터로, 올리브로, 피시소스로, 설탕과 소금으로 체취를 갈아입는 듯한 놀라운 전환의 한 입. 이렇게 다른 관점의 맛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즐거운 발견. 

팬데믹 직전까지 세상은 그렇게 맛있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완전히 다른 기후와 문화권의 맛을, 그 관점을 경험하는 것. 이 압도적인 즐거움을 2년 넘도록 잊고 살았는데, 글을 쓰면서 다 기억이 나버렸다. 괜찮다. 팬데믹 동안에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 또 다른 맛 경험도 있으니까. 3범주, 국내의 지방 음식 문화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며 반대급부로 국내 여행 수요가 폭발했다. 어느새 전국 방방곡곡이 여행지가 돼가는 것만 같다. 주변 사람들부터도 다들 참 부지런히 조국 강산을 유람하고 다닌다. 나 역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국내 여행을 기꺼이 떠나 그 지역의 고유한 맛을 만나는 값진 공부의 기회로 여긴다. 

한국은 무척 작은 나라지만, 이 좁은 반도 안에서도 지역마다 기후와 식량 생태계가 조금씩 다르다. 4범주 해외의 음식 문화를 경험하는 일이 거시적인 놀라움이라면, 3범주 지역의 맛을 경험하는 일은 미시적인 발견의 연속이다. 김치만 봐도 남부에서 쓰는 젓갈과 중부에서 쓰는 젓갈의 종류가 다르다. 잡히는 생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잘 자라는 고추의 종류가 다르니 고춧가루의 특색도 달라지고, 김치에 넣어 발효를 돕고 맛을 두텁게 하는 곡물 또한 각 지역에서 흔히 나는 제각기 다른 것을 쓴다. 거시적으로 다 같은 김치일지언정, 지역마다 미시적으로는 모두가 다 다른 김치를 김치라고 부른다. 

주로 토박이 할머니들이 집에서 밥 짓듯 식당을 꾸리는 이런 곳들의 맛을 발견하기 위해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식당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점심 끼니를 해결하는 오래된 식당을 찾곤 한다. 다른 풍토의 맛을 찬 하나, 국 하나, 밥 한 공기마다 새록새록 배우는 것은 으리으리한 미쉐린 3스타가 주는 배움과 다르지 않은 가치 있는 배움이다. 그 땅의 재료로 그 땅의 요리를 익힌 이들의 명맥이 더 끊기기 전에 되도록 많이 경험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의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일


2범주가 그동안 내가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주로 탐사하던 맛의 거리 영역이다. 어느 식당의 얌꿍이 가장 밸런스 좋은 맛을 내지? 너무나도 단순한 구성의 잠봉뵈르 샌드위치는 어느 곳이 가장 훌륭하지? 우동은 어느 집 면이 가장 탄탄하게 잘 살아 있지? 라고 물었을 때 답이 돼주는 식당들이다. 그야말로 어떤 음식 또는 장르에서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식당. 대개는 장인정신으로 자신을 벼린 이들이 지키고 있어 취재든 일상대화든 무척 즐겁고 건실해 언제라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곳들이다. 작은 재료 하나, 조리 과정의 사소한 하나하나 모두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고민한, 이유 있는 선택을 거친 비범한 음식들이다. 

이전의 활동영역이었던 2범주와 4범주의 맛 경험이 사라지다시피한 후, 나는 푸드 칼럼니스트로서의 ‘팬데믹 블루’를 겪었다. 이따금 3범주를 여행할 때가 아니고서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며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느낄 일이 오랫동안 없었다. 

2년 동안 이것저것 먹고 이것저것 요리하기도 했지만, 이전에 경험했던 압도적인 맛의 세계관을 접촉하지 못하니 맛있는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점점 사라져 갔다. 

견디지 못했나 보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무런 기대 없이 긴 산책을 나섰고, 아무런 기대 없이 안 가본 식당을 아무 데나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한 시간이면 됐던 동네 밥 산책이 두세 시간으로 늘어났고, 1범주의 영역도 그만큼 넓어지게 됐다. 20분을 걸어야 하는 시장 골목에 있는 뼈해장국집은 소스나 반조리 재료를 많이 사용하지만, 그 한계를 성실한 사장님의 손맛으로 꽉 채워 넘는다. 생마늘을 듬뿍 갈아 넣은 겉절이김치의 생생함이 무료한 뼈해장국 맛을 꽉 채워 보완한다. 인근 공사장마다 장부를 대고 있는 한식뷔페집은 조미료 맛에 과하게 의존하지만, 한 끼에 반찬과 국, 메인 요리에 밥까지 여남은 가지 맛을 다 볼 수 있다. 2범주 장인들의 영역에 갖다 두면 빛을 보지 못할 그들, 그래서 번쩍거리는 완성도의 세계를 좇느라 여태 보여도 보지 않았던 그들. 그늘처럼 여겨졌던 1범주의 대수롭지 않은 식당이 나를 가르치는 것은 음식 문화, 기후와 풍토 같은 거창한 영역이 아니다. 되레 너무 기본적이라 오히려 보지 않고 있었던 기초 중의 기초다. 

음식을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판다는 것은 생계의 수단이다. 매일의 업을 성실하게, 주어진 환경과 제약이 분명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음식을 팔고자 최선을 다해 나가는 건강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 가장 가까운 곳의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일이다. 음식이 다소 완벽하지 않을 수 있고, 정갈하거나 우아한 대신 우악스러워도 좋다. 몸을 이루고 삶을 이끄는 영양소를 뱃속 가득 채워 또 다른 하루의 반나절을 힘차게 일한다. 다른 테이블에서 바삐 음식을 먹어 삼키는 이들을 보며 나는 또 밥의 의미를 배운다. 
소홀히 지나쳤을 것을 덕분에 알게 됐으니 이쯤 되면 팬데믹 덕분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바이러스에게나 인간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다시 봄이 활짝 열렸다. 어디로든 얼마든지 걷기 참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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