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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영화상담실
그게 결혼생활이야!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2년 05월호


“너의 두개골을 반으로 갈라서 너의 뇌를 들여다보고 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 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어.” 남편은 아내를 바라보며 도저히 알 수 없는 아내의 심리를 추측한다. 나도 신혼 때, 아니, 함께 30년을 살아온 지금도, 늘 고민한다. 아내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의도로 내게 그런 언행을 한 것인지. 하지만 아직도 알 수 없다. 왜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퀴즈를 내고 드라마를 찍어야 하는 걸까? 그냥 쉽게 살면 안 되는 걸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질리언 플린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나를 찾아줘>는 멋지고 낭만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남자의 입장에서, 평범한 나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름답고 지적이고 사교적인 여성이 나를 좋아한다. 사랑한단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엄청난 부자다. 둘은 결혼을 하고 뉴욕에서 완벽하게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낸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찾아오고, 둘은 직장을 잃고, 마침 남자의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는다. 둘은 어머니와 함께 하기 위해 남자의 고향 미주리로 간다. 그때부터 영화는 심리 스릴러로 장르가 바뀐다.

아내는 완벽주의자다. 품위 있고 지적이고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강요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무서워서 한쪽 구석에 앉아 고양이를 꼭 껴안는다. 남편은 젊고 순한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그걸 눈치채지 못할 아내가 아니다. 아내는 남편을 몰락시킬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그게 결혼생활이야!”라고 속삭인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 현실적으로 행복보다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 전제조건은 서로 다른 대안이 없으니 함께 잘 살아 보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과 결심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억울해도 내가 먼저 양보하고 상대방과 더 현명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 수 있다. 70년 이상 단란한 부부생활을 한 세계 최장수 부부상 수상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부부 백년해로 헌장’의 일부를 소개한다.

첫째, 인내하며 다툼을 피하라.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하면 먼저 내 잘못을 돌아보고, 두 번째 도발엔 상대가 실수했다고 믿어보고, 세 번째 도발에는 날 화나게 하려는 것이냐고 언어적 확인을 한다면 다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은 참아야 한다.

둘째,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 인간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대상을 좋아한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사랑은 말과 행동으로만 드러나니까.

셋째, 함께 기뻐할 일을 만들라. 아직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함께 공유하거나 즐길 수 있는 활동과 취미를 만들자.

넷째,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 과도한 의존의 결과는 늘 상대방에 대한 실망과 비난이다. 결혼은 어른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며, 중간 지점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상태여야 한다. 배우자에게 걸었던 기대가 타당했는지, 나도 배우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말하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계명들이다.

어떤 관계든 논리보다는 따뜻하고 이타적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옳고 그름을 따진 합의보다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을 느낄 때 관계는 더 끈끈해진다. 판사나 검사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변호사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길은 멀고 그 길을 함께 가줄 사람은 귀하다. 귀한 사람을 잘 지켜야 한다.

원작 소설은 아내가 “내가 마지막으로 결론을 말했으니까, 내가 이긴 거야!”라며 끝난다. 이기고 싶은 인간의 본능에서 모든 갈등은 시작된다. 이길 수도 없고, 이길 필요도 별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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