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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 운운하는 게 상식적인가?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2년 05월호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오르면 누구든지 기분이 좋고 반대라면 당연히 아닐 거다. 주식은 늘 오르락내리락 곡예를 반복하니 투자자들의 마음도 주기적으로 일희일비한다. 금액이 크고 기다림이 길수록 감정은 요동칠 거다. 초초한 만큼 환희와 절망이 커지니 지나치게 기뻐하고, 지나치게 슬퍼한다. 지금껏, 절망에만 주목해 주식투자의 위험성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식 열풍에 대한 우려는, 자칫하다 실패한 안타까운 시례를 언급하며 자칫하면 망하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환희’, 그러니까 별안간 대박이 난 경우도 그 사회적 폐해를 곱씹어 봐야 한다. 누가 돈을 번 게 배 아파서 이러는 게 아니다. 얻은 자가 있으면 잃은 자가 있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기뻐하는 이들이 자기 혼자 좋아 죽는 건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들이 흥분해서 뱉어내는 말들 속에 배인 차별과 혐오의 씨앗들을 보자는 거다.

주식시장이 달아올랐다는 뉴스가 등장하는 시기마다 SNS에는 ‘자신의 투자성적표’를 공개하면서 갑자기 자기 계발 전도사나 된 것마냥 인생조언을 하기 바쁜 이들이 넘쳐난다. 동기부여를 가장한 재테크 강연도 활기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섬할 때가 종종 있다. 자랑만 하고 끝내면 문제 될 것 없지만, 그렇게 깔끔한 경우는 드물다. 자기 잘난 것 드러내다가 꼭 못난 사람의 특징을 운운한다. 주식투자 망설이는 사람의 특징을 멋대로 규정하는 걸로 시작해서 재테크 실패한 사람들은 평소에도 엉망진창이라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함부로 말해도 되는 특권이 있는 줄 아나보다. 자신이 어떤 단계에 이르렀다고, 모두가 아래에서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무례함이다. 100명 중 10명이 무엇에 미쳐 있을 땐 그리 빈번하지 않았던 일이다. 하지만 100명 중 10명 빼곤 모두가 특정 이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등장하면 성취한 쪽에는 반대편을 함부로 재단해도 된다는 오만한 권력이 생긴다. 

주식뿐이겠는가. 어떤 분야든 ‘과잉되면’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 따윈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다. 부자가 된 사람의 특징만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꼭 가난한 사람들이 어떠어떠하다는 편견을 덕지덕지 생산한다. 날씬한 사람이 이렇더라고 말하다가 살찐 사람들의 실상을 말하겠다면서 혐오의 화살을 세차게 뿌리는 건 다반사다. 부동산 투자로 경제적 자유인이 됐다는 아무개는 “언제까지 내 집 마련도 못 하고 한심하게 살 거냐! 자식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냐!”라며 화를 낸다. 자만심에 비례해 ‘부동산 투자 실패한 이들의 특징’도 아무렇게나 소개된다. 부유한다. 빌라를 매매해서 그렇다, 아파트 평수에만 집착해서 그렇다 등등, 그저 평범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발가벗긴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실패에 대한 업신여김을 정당화하는 것, 한국인들에게는 삶의 이치처럼 자연스러울 거다. 이걸 부정하면 ‘자격지심’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니 자연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무엇에 집중하는 건, 철저히 자신의 성장을 위한 것이지 누구를 비방하기 위함이 아니어야 하지만 현실은 오싹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면서 머리 긁적거리는 흉내라도 낸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이 ‘공부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공부 못하는’ 경우를 나열해도 무방한 것처럼 여긴다. 

인간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선사하는 분류가 쉽사리 이뤄지는 사회, 과연 상식적일까? 이 모욕의 크기가 클수록 아니꼽고 치사하고 더러워서 욕망의 늪에 빠져드는 사람도 늘어난다. 개중 운 좋은 아무개는 또 어디서 차별과 혐오를 무기로 자신의 성공담을 말하기 바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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