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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 변화의 현장을 가다
경남 거창, ‘승강기’로 올라서다
이지은 『나라경제』 편집장 2022년 05월호

 

 
경남 거창에는 ‘오홍(五紅)’이 있다. 다섯 가지 붉은 것이란 의미로, 사과·딸기·오미자·소고기·돼지고기를 일컫는다. 그러나 제주를 제외하고 기후조건이 비슷한 한반도에서 과일이나 축산 등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특화산업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 1차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거창에는 지역을 먹여 살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2009년 하나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국가가 운영하던 한국폴리텍대 거창캠퍼스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거창군이 이를 인수해 사립으로 전환한 것이다. 학교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 끝에 승강기 전문가를 키우는 2년제 전문대를 구상했다. 새롭게 비상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승(昇)강기’에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 유일 승강기 전문 특성화대 설립이 그 시작 

2년제 승강기 전문대를 만들고 나니 학생들이 졸업해 취업할 곳이 필요했다. 거창군은 전국의 승강기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유치에 나섰다. 거창에 국내 유일의 승강기밸리가 조성된 배경이다. 2009년 14개 정도에서 출발해 현재 37개 승강기 기업이 거창에 모여 있다. 승강기 부품과 안전 등을 인증하는 승강기안전기술원도 생겼다. 이로써 승강기를 중심으로 한 산·학·연·관이 경남 거창에 완비됐다. 

우리나라 승강기 운행대수는 총 75만여 대로 세계 7위이고, 매년 생산대수는 4만6천여 대로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다. 국내시장 규모는 약 4조 원, 유지보수나 제조·설치 업체 수는 1,100여 개, 종사자는 2만5천 명 정도다. 

우리가 늘상 이용하는 승강기는 기계와 전기전자, IT와 건축 등이 망라된 종합제품이다. 아파트 민원 절반이 승강기와 관련되고, 승강기가 초고층 빌딩에 멋스럽게 들어가 하나의 인테리어 역할을 하기도 하며, 승강기 안에서 돌발상황도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등 승강기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우리 일상에서 떼놓을 수 없게 됐다. 이현석 한국승강기대 총장은 “현대사회에서 건물이 고층화될수록 신속하고 안전한 승강기의 역할은 그 건물의 가치와 효용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밝히며 한국승강기대가 이런 시대 흐름에 발맞춰 설립됐음을 강조했다.

글로벌 승강기 기업들에 도전장 내민 ‘모든엘리베이터’···K승강기가 개도국 협력사업 수단 되기도 

거창 승강기산업 형성에 중소·중견기업의 선도적 노력도 중요했다. 김호일 모든엘리베이터 대표는 1992년 대구에서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거창에서 승강기밸리 조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2013년 회사를 거창으로 이전했다. 그는 승강기밸리기업협의회 회장을 3년씩 두 번이나 역임하면서 거창의 승강기밸리 조성부터 현재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쭉 지켜봤다. 기업들의 대표로서, 산업을 일구는 주체로서 국내 승강기산업과 거창 승강기 중소기업들의 역할을 찾는 데 목소리를 내왔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을 상대로 경쟁력을 키우며 승강기와 함께해 온 지난 30년에 특별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는 뼛속까지 ‘승강기맨’으로 살아오면서 대기업 제품에 견줄 수 있는 완성형 승강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맞춤형 특수승강기의 강점을 내세워 설계, 생산, 설치, 유지보수까지 원스톱서비스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려 현재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중동, 러시아, 남미지역 등을 다양한 품목으로 공략하고 있다.

정부는 지역소멸에 대응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더 이상의 인구 축소를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대안은 지역에 먹거리를 만들어 지역 안에서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산업이 있으면 근로자가 오고, 소비가 일어나고, 사람이 정주하며 또 근로자를 배출하는 등 선순환이 이뤄진다. 

거창군은 10여 년 전 승강기라는 먹거리를 발굴했고, 지역주민들과 산·학·연·관이 합심해 지역성장 모델을 완성해 가고 있다. 현재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지만 승강기를 중심으로 37개 중소기업이 700여 개 일자리와 연 매출 2천억 원을 창출해 내며 승강기산업이 거창군의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2019년 거창승강기밸리 일원을 국내 최초의 승강기산업특구로 지정하고 국비지원과 규제특례 혜택을 주고 있다. 승강기 안전인증과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승강기안전기술원도 거창승강기밸리 내에 개원했다. 이로써 거창군이 승강기산업 허브도시의 외연을 갖추게 됐다. 

한국승강기대는 이젠 해외에서도 기술을 배우러 찾아오고, 해외로 나가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는 명실상부한 승강기 사관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승강기산업은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의 규모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승강기시장에서 3~4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지는 승강기가 더욱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정부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인터뷰 1: 이현석 한국승강기대 총장

승강기대가 조금 낯설다.
개교 12년이 됐는데 많이들 모른다. 승강기산업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주류에 속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승강기 특성화대는 우리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기존에는 기계과나 전기과에서 관련 교육을 했다면 지금은 우리 대학에서 승강기 관련 기계, 전기전자, IT를 모두 가르친다. 최근 충원율은 95% 이상, 9년 평균 취업률은 87%에 이른다. 승강기는 회사마다 표준을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한다. 그래서 현대엘리베이터 등 대기업 취업률도 높은 편이다. 

학과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승강기산업은 유지보수 60%, 설치 20%, 제조 10%, 디자인·설계 10% 정도로 구성된다. 자동차와 달리 승강기는 자동화가 어려워 설치와 유지보수 모두 사람이 해야 한다. 유지보수의 경우 설치나 제조, 설계를 모두 알아야 해서 학과가 나뉘어 있어도 실제로는 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년제지만 전공심화 과정에서 2년을 더 하면 4년제 학사학위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 계약학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베트남 등에서도 학생들이 온다. 오는 9월에는 타지키스탄에 첫 분교를 연다. 수도 두샨베의 도시화로 승강기 수요가 많아지면서 관련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느낀 타지키스탄 정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국가 간 협력사례가 흥미롭다. 다른 계획도 있나?
가장 큰 목표는 글로벌화다. 즉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남미 등에 승강기 교육을 수출하고 엔지니어를 양성해 승강기산업을 일구고, 그곳의 인재들을 우리 학교로 데려와 거창을 세계에서 명실상부한 승강기 허브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개도국 협력(ODA) 사업도 활발히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콜롬비아, 베트남, 미얀마에 아파트를 짓는데 승강기 유지보수 관련 ODA를 우리와 한다. 품목으로는 하나지만 승강기의 활용이나 적용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

우리는 도시화가 정점에 이르러 승강기산업 성장이 정체될 것 같은데, 앞으로의 전망은?
1997년 외환위기 때 LG산전이 오티스로, 동양엘리베이터가 티센크루프(현 TK)로 바뀌면서 토종은 현대엘리베이터만 남았다. 외국 기업이 시장을 잠식한 와중에도 대기업 현대는 잘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가전 등이 세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듯 앞으로 승강기도 톱클래스로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도시화 과정에서 축적된 승강기 기술력을 해외로 전파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승강기산업이 막 시작되는 단계라는 것이 중요하다. 승강기 교육을 수출함으로써 우리 기술력으로 그곳의 승강기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

시장 확대 전략은 무엇인가?
중국 제품은 저가 전략으로 공세 중이지만 고장이 빈번하고, 글로벌 제품은 너무 비싸다. 그래서 가격 대비 성능이나 안전면에서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한국 제품이 선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경상남도와 중앙정부에 전달하니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양주와 포천 등 수도권 쪽에도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교육수요가 많다 보니 지난해 서일대에 승강기학과가 만들어졌다. 또 올 하반기에 현대엘리베이터가 충주로 이전하니 한국교통대가 자동차학과 안에 승강기 관련 커리큘럼을 개설했다. 우리는 세계시장을 공략해 선점효과를 노리려 한다.  

자동차는 전기차 등으로 획기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승강기 분야는 어떤가? 
자체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는 분야가 에너지다. 유리 승강기에 태양광 판넬을 붙여 태양열을 집적했다가 긴급한 상황에서 발전기처럼 쓸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와 있다. 또 원격 플랫폼이 구축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소음 등이 있으면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으로 감지해 중앙 모니터링시스템에서 비상벨을 울리거나 119 연결 또는 가까운 층으로 자동 이동하도록 하는 등 승강기 돌발상황 발생 시 제어할 수 있다. 화재현장에서 재난용 승강기가 활용되도록 하는 등 안전과 관련된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거창승강기밸리가 성장하려면 학생들을 지역에 남게 하는 게 과제일 것 같다.
거창엔 대부분 중소기업이라 학생들의 기대임금 수준을 맞춰 주기 어렵다. 물류도 불리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부울경 메가시티가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돼 거창이 승강기 허브도시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승강기밸리에 규모 있는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 지금 거창군과 지방소멸자금 재원으로 청년주택 등 유인책을 구상하고 있다.


인터뷰2: 김호일 ㈜모든엘리베이터 대표

승강기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졸업하고 금성사(현 오티스)에 입사했다. 당시 금성산전이 동남아시아로 승강기 수출을 많이 했다. 그러다 클레임이 걸렸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공모가 있었다. 내 제안이 선정돼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을 다니며 교육도 했다. 그러다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처음엔 주차기를 만들었고, 2년 후 화물용 승강기로 전환했다. 한 달에 승강기 1대만 팔아도 5명의 직원과 먹고살 정도가 됐다. 대구에서 100평 되는 공장으로 시작해 성서공단에 500평 공장을 짓고, 그러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첫 거래가 멕시코였는데 한 번에 70만 달러, 당시 환율로 한 6~7억 원 정도를 수주하니 은행에서도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웃 나라도 아니고 멕시코시장엔 어떻게 진출했나. 
멕시코 대형 유통업체의 승강기가 구시대 제품이라는 말을 듣고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첫 수출을 성사시켰는데, 무사히 납품을 하고도 돈은 못 벌었다. 그 나라 문화를 모르니 여러 가지 애로가 있었다. 오히려 돈을 번 것은 외환위기 때 관공서를 상대로 사업을 하면서다. 그리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할 즈음 마침 승강기밸리 조성 사업이 발표되면서 2012년 말 거창에 사옥과 공장을 지었다. 새 공장이 들어오면 3년마다 3번의 고비를 겪어야 한다고 하는데, 6년 차인 2018년 「승강기 안전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모델인증과 개별인증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부침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승강기 사고의 대부분은 문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이중록킹 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또 문에 450줄의 충격을 줘도 이탈이 안 돼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데, 우리는 650줄 강도에도 버티는 문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이것을 중소기업 우수제품으로 조달청에 납품하고 수의계약을 많이 하다 보니 수주가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승강기산업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철 자재 값이 거의 50% 올랐다. 모든 표준은 철을 기준으로 하는데 철이 1kg당 950원 하던 게 지금은 1,500원이 됐다. 

국내 승강기시장 현황은? 
오티스, 현대엘리베이터, 티센크루프(현 TK) 등 글로벌 기업과 일본 미쓰비시가 국내 승강기시장의 약 85%를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 시장 규모로는 우리나라가 3~4위다. 아파트 등 고층건물이 많아 승강기 수요가 높다. 방글라데시 등에선 우리 제품이 인기가 좋아 가격이 비교적 잘 형성되고 있지만, 그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4조 원 정도 되는 국내 승강기산업에서 유지보수시장이 1조 원 가까이 된다. 우리 제품의 유지보수는 서로 맡으려 한다. 그만큼 우리 승강기가 좋다는 의미다.

모든엘리베이터가 만든 승강기는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 
아파트보다는 빌딩, 관공서에 많다. 해외 거래도 진행 중인데, 러시아와는 전쟁만 끝나면 계약을 하도록 준비돼 있다. 미얀마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수출했으며, 방글라데시에도 계속 납품하고 있다. 인도에도 1년에 300만 달러 규모의 수출을 했다.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방법은 대기업보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수밖에 없다.

모든엘리베이터만의 운영 노하우가 있다면? 
중소기업이 잘되려면 대기업처럼 시스템화가 돼야 한다. 중소기업은 한 사람이 빠지면 그 자리를 메우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 회사는 얼마 전 ERP시스템을 도입했다. ERP시스템 도입 전에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내가 직접 고안해 우리 공장의 모든 업무를 디지털화했다. 그러다 정부지원을 받아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해, 곧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ERP시스템은 생산공장에 모니터를 두고 생산공정이나 영업 등 전부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다른 기업과도 공유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기업이 승강기 사업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장기 투자가 필요해서다. 우리는 매월 30대 이상의 승강기를 만들고 있고 하루 2~3대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설비를 갖춰놨다. 10여 년간 축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한 기초산업 등은 사업에 장점이 되지만,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은 악재다. 대기업과 견주려면 스위스 명품시계만큼 부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여 고부가가치화하는 수밖에 없다. 「승강기 안전관리법」에서 정한 제한수명을 초과해도 끄떡없는 명품 승강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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