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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상공인의 이유 있는 실험, 현실의 쓴맛 이기는 추억의 ‘오란다’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06월호


수제강정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잘 만든 수제강정 하나로 누군가의 입맛, 생각을 바꿀 순 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강정은 쓰디쓴 삶의 순간을 조금은 달달하고 말랑하게 해준다. ‘문씨네 오란다 수제강정(이하 문씨네 오란다)’을 꾸린 문경혜 대표의 일명 ‘강정철학’이다. 

아버지 뒤춤 속 오란다의 기억  

개울 앞에 작은 가게들이 늘어선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바들말길. 그 길 끝에 이르면 고소한 냄새로 발길을 붙드는 수제강정 가게가 하나 나온다. 얼핏 물류창고처럼 보이는 ‘문씨네 오란다’다. 이곳의 주력메뉴는 오란다와 각종 강정 그리고 어포튀김. 30년 전 시장에서나 봤음직한 추억의 간식들이다. 

3년 전 이곳에 문씨네 오란다를 연 문경혜 대표는 어릴 적 추억을 사업으로 소환했다. 결혼 전 그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직업이 바뀌었다.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며 솜사탕과 요즘 유행하는 달고나를 기반으로 이벤트 행사 진행을 했어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다녔죠.” 수년간 에너자이저처럼 전국을 누빈 탓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인생의 완급 조절이 그 무엇보다 절실했던 그때, 그는 우연히 오란다 하나를 맛봤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에 어릴 적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어릴 적 오일장이 열릴 때면 아버지는 항상 손을 뒤로 해서 뭔가를 숨기고 들어오시곤 했어요. 확인하지 않아도 그게 사이다와 오란다라는 걸 알고 있었죠.” 

오랜만에 맛본 오란다는 어릴 적 기억을 전복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는 곧장 레시피를 알아봤다. 그리고 직접 만들어보는 작업으로 이어갔다. 맛있는 오란다를 완성하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실패가 거듭됐다. 실패에 또 다른 실패를 딛고 마침내 성공의 문턱을 넘었다. 수차례 다시 만들고 주변의 평가를 받으며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그만의 ‘황금비율’ 레시피를 완성했다. 

오란다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고 좋은 나머지, 하루빨리 오란다 가게를 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침 지인이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하반기 진천군청 청년창업 지원사업 공지를 전했고 겨우 지원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운 좋게 청년창업 지원 기업에 선정, 꿈에 그리던 ‘문씨네 오란다’를 열 수 있었다.  

텅 빈 가게 건물 안에서 가족들과 집기 배치와 동선에 대해 논의했던 일, 밤늦게까지 가게 불을 켜고 청소하고 작업했던 일, 바닥칠 작업을 한 날 밤 비가 쏟아져 바닥 페인트에 물 자국이 남은 일 등 모든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됐다. 대한민국 땅에서도 진천, 진천에서도 작은 마을 한 구석에 가게를 연 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세련된 이름을 단 서양식 디저트의 돌풍이 거셀 때도 그는 백미나 흑미, 보리, 조청 등 국산 재료를 고집한 ‘구식 과자’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오란다와 강정만을 만들어 판매했다. 그러나 가게를 운영하면서 모든 상품에는 저마다의 ‘피크 시즌’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첫 1년은 비수기와 성수기를 고스란히 맛본 도입기였다. 이후 그는 상품 구성을 달리하며 변화를 꾀했다. 어포튀김도 만들어 팔고, 한동안은 <오징어 게임>의 선풍적 인기를 등에 업고 달고나 굿즈도 제작했다. 

“입맛은 습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도 한때는 빵이나 서양식 디저트류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점점 한식 디저트가 좋아지네요.” 

팬데믹을 거치며 전통 과자를 찾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추억을 찾는 사람과 건강을 찾는 사람, 크게 두 부류였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문 대표는 ‘추억’에 ‘건강’을 얹었다. 문씨네 오란다의 대표상품은 부드러운 오란다와 바삭어포다. 특히 설탕 대신 값비싼 조청을 써서 만든 오란다는 은은하게 달고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견과가 씹힐 때 느껴지는 고소한 풍미도 매력적이다. 강정을 만들 때는 엄수하는 원칙이자 철학이 있다. 인위적인 당도는 최대한 줄이자는 것과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자는 것. 건강은 맛보다 상위에 있고, 단맛은 재료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도시 그리고 소상공인이 
한계 아닌 가능성을 의미했으면 


마음 하나만으로 전국 모든 이에게 닿고 싶다던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문씨네 오란다는 온라인에서 훨씬 인기가 많다. 시장 상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리적 불편을 온라인 마케팅으로 극복한 역발상의 결과다. 

문씨네 오란다가 입점한 네이버 스토어나 아이디어스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수제강정과 어포 주문이 줄을 잇는다. 비주얼에 반하고, 맛에 또다시 감동한 고객들의 후기도 넘쳐난다. ‘이렇게 맛있는 강정을 착한 가격에 선보이는 사장님을 돈쭐내주자’는 재미있는 내용도 있다. 고객들은 주로 30~50대다. 캠핑이나 등산 등 여행이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혹은 부모님, 선생님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나 답례품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전통 과자가 주는 정이 가득한 이미지, 건강한 전통 간식이라는 인식이 추억의 과자 오란다를 찾게 만드는 포인트가 아닐까 해요.” 

스스로 부딪히고 도전해 온 그의 역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교과서가 됐다. 걸어온 거리만큼 시야는 더 넓어졌다. 그의 꿈은 지역 명물이 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천안에 호두과자, 전주에 초코파이가 있듯 진천 하면 떠오르는 대표 먹거리를 개발할 계획이다. “지방에서도 창업의 꿈을 모락모락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이브커머스 교육센터나 세트장, 장비 지원은 물론, 1인 기업이나 신규 사업자, 여성 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렌털 사무실도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그러면 지방이 한계가 아닌 가능성이 될 거예요.” 

그는 요즘 다시 ‘열공’ 중이다. 진천 지역의 특산물인 쌀은 물론이고 다른 작물들에 대한 연구도 놓치지 않는다. 문씨네 오란다와 어울리는 신상품을 만드는 작업을 완성시키고 싶어서다. 

“창원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해 성공한 박말순 할머니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장단 맞춰 신나게 놀다 보면 사람들이 와서 함께 그 장단에 놀 거라고요. 소도시라고, 소상공인이라고 얕봐서는 안 됩니다. 알고 보면 세상을 움직인 큰 힘은 아주 작은 시작에서 비롯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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