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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2022년 06월호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구에서 언어를 배웠다. 그 말투가 경상도 사투리라는 걸 대구를 떠나기 전까지는 특별히 느껴본 적이 없다. 스무 살이 넘어 서울의 한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따는 데까지 9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그 9년간 내 말투를 낯설어하는 사람을 늘 마주했다. 후배일 때는 선배들이 신기해했고 선배일 때는 후배들이 “경상도 출신이세요?”라면서 말을 걸었다. 나는 묻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서울 출신이세요? 말투가 그래서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말투를 잣대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사람은 언제나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소수인 나는 다수의 무례한 요구에 늘 노출됐다. 특정한 발음을 해보라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예를 들면, “쌀” 같은 거였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러니까 평생 해왔던 대로 입을 떼면 사람들은 키득거렸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락된 유희를 즐기는 것 같았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이 웃기는지 알지를 못했다. 그저 위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후 9년을 더 서울에서 살았다. 나는 서울 시민이었지만 늘 “아, 그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으로 기억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 아이가 가끔 부모 말투를 사용하면 유치원에서든 학원에서든 화제가 됐다. 그게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방언 수준이라면 약간의 주의가 필요할지 모르나, 단순히 억양만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남들이 억양을 올릴 때 내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언급됐다. 겉으로는 ‘신기하게’ 다뤄졌지만 속내는 ‘어쩌다가’라는 뉘앙스가 다분했다. 

별 큰 문제도 아닌데, 왜 이리 심각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말투로 낯선 이들과 대화가 시작되면 그게 또 장점 아니냐면서 괜한 트집 잡지 말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는 걸’ 단점이라고 하는 소릴 들어본 적 있는가? 사투리를 쓰지 않는 누구도 사투리를 부러워하지 않는데 애써 장점을 찾는 게 애잔하다. 내가 예민한 것일까? 혹시, “나는 그냥 사투리 쓰는 사람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의 황당함을 아는가? 가끔 방송에 나갈 때마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내 말투가 싫다는 댓글을 여지없이 만난다. “나는 그냥 표준어 쓰는 사람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있다 한들,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거다.

말투가 다른 건 그냥 다른 거지만, 우리는 표준어를 기준 삼아 다른 걸 특별하게 취급한다. 나는 작가 소개를 받으면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유명한”이라는 민망한 수식어를 곧잘 듣는다. 좋은 의도였을 거다. 하지만 저 ‘구수하다’는 표현은 투박한, 거친, 우락부락한 등의 느낌으로 쉽게 진화한다. 나는 대구 사람 스스로가 “우리 말투가 구수하지”라고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저 해석은, 표준어 쓰는 사람이 자신의 낯섦을 에둘러 표현한 어색한 예의일 뿐이다. 나는 표준어를 쓰는 사람에게 별다른 부연설명을 하지 않는데, 내 언어는 누군가의 귀에 ‘특별하게, 그러니까 이상하게’ 들리기에 자꾸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이어져 간다. 

수도권에 전 국민이 다 모여 100년쯤 산다면 사투리도, 표준어라는 명칭도 사라질 것이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언어는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한 나라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억양을 지니는 게’ 더 오싹한 거라는 걸 이해하는 게 맞을 거다. 표준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억양 하나로 사람이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받는 게, ‘2022년’이라는 시대와 너무 어울리지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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