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글로벌 커피체인점 S사는 자사 창립 50주년과 세계 커피의 날을 기념해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는 ‘리유저블컵 데이’ 행사를 진행했다. 음료를 주문한 고객에게 다회용컵을 무료로 제공했는데, 이날 하루에만 받을 수 있는 ‘한정판’ 다회용컵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문한 커피를 받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고 8천 명 이상이 주문 앱에 몰려 접속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엄청난 대기 행렬이 이어졌고 순식간에 리유저블컵이 소진되기도 했다.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던 친환경 행사 자체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디자인이 예쁘기로 유명한 S사의 컵을 사기 위해 불필요한 음료를 10개 이상 구입해 마시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가 하면, 집에 이미 수십 개의 텀블러가 있는데도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또 컵을 구입해 환경보호를 내세운 행사의 의미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환경 차원에서도 문제였지만 근로자의 노동 문제가 더 큰 이슈였다. ‘리유저블컵 데이’ 행사로 매장 곳곳에서는 직원과 손님 간 실랑이가 벌어졌고, 갑작스런 주문 폭주로 직원들은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렸다. 근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이고 과도한 마케팅에 직원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결국 “리유저블컵 이벤트, 대기음료 650잔에 파트너들은 눈물짓는다”라는 메시지를 새긴 트럭 시위로 이어지게 됐다. 환경을 살리자는 좋은 취지로 행사를 개최했지만 “종업원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또 다른 고객이다”라는 진리를 S사는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의 상당수 기업은 ESG 중 환경(E) 측면만 내세우며 탄소저감, 에너지 절약, 플라스틱 줄이기 등의 친환경 활동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에서도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영역에도 관심을 갖고 관련 규제 및 정책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7월 EU는 ‘소셜 택소노미(social taxonomy)’ 초안을 발표했다.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원칙과 기준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인간다운 삶의 기준 향상, 좋은 일자리 창출, 소비자 이익 증진,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조성 등의 4가지 사회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동안 EU 택소노미는 환경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투자에 대한 비재무적인 정보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소셜 택소노미는 ESG 경영 실행에 있어 무엇이 실질적인 사회적 공헌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및 지배구조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소셜 택소노미의 등장은 환경에만 치우친 ESG 경영을 사회 영역으로 확대시킴과 동시에, 겉으로만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 이른바 블루워싱(bluewashing, 사회적 세탁)을 걸러내는 역할도 한다. 소셜 택소노미는 ESG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동반성장을 이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에 나오는 말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즉 무엇이든 한쪽이 지나치면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ESG도 환경이든 사회든 지배구조든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