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고령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잘 모르고 약물을 남용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건강 문해력이 높지 않은 환자를 돕기 위해 리터러시M을 만들었습니다.”
뜨거운 벤처 붐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의사도 예외가 아니다. 휴톰, 비플러스랩 등 의사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에는 강동경희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병원에서 왕성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임상의학을 연구하며 동시에 창업에 나선 이상호 케이바이오헬스케어 대표를 만났다.
창업자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주위의 문제해결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의사가 어떻게 창업할 생각을 했을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대표도 문제가 생겼을 때 풀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군의관 시절, 훈련을 받다 근육 손상으로 급성 신부전이 와 투석을 받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것으로 설명이 안 되는 희귀한 근육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들을 보고 어떻게 해결할까 궁리하다 독일의 한 의대에 계신 한국인 교수님이 진단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 대표는 당시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연구비를 신청해 환자들의 검체를 독일에 보내서 진단을 의뢰했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희귀 대사 근육질환 진단을 해냈다.
이후 이 대표는 전문의가 돼서도 습관처럼 연구에 몰두했다. 10년간 SCI논문을 100편 넘게 발표해 연구에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났을 정도다.
구글도 포기한 개인건강기록서비스···공공데이터 개방되며 가능성 찾아
그런데 그가 20여 년의 의사생활 동안 꼭 풀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당뇨, 고혈압, 심장병이 있는 환자가 약을 잘못 복용해서 신장 기능을 갑자기 한 5년 뚝 떨어뜨려서 병원에 오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예를 들어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만성질환 환자가 정형외과에서 진통소염제를 처방받고 신장 기능이 더 많이 나빠진 경우죠.”
환자가 본인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병원 간에도 환자의 건강, 약 복용 데이터가 완전하게 호환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였다. 또 환자가 의료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의료 문맹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환자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가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의료환경상 스타트업이 개인의 의료데이터를 통합·관리하는 개인건강기록(PHR)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동안 불가능에 가까웠다. 온라인 보안 문제 등 많은 걸림돌에 천하의 구글도 구글헬스라는 PHR서비스를 시도했다가 2012년 중단했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는 이런 장애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본인인증을 하면 처방약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데이터가 개방되면서 스타트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스타트업들은 공공데이터 개방을 통해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으며,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를 자각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변화하는 의료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에서 의대 교수 6명, 컴퓨터공학과 교수 3명과 팀을 만들어 정기적인 연구 미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TF팀장이었죠.” 서로 다른 영역의 교수들이 만나 융합형으로 토론을 하자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의료정보 시스템으로 창업을 해보기로 했고 그 총대를 이 대표가 매기로 했다.
2021년 초 케이바이오헬스를 설립했다. 설립 취지에 공감해 노련한 개발자들이 참여하면서 제품 개발도 급물살을 탔다. 그 결과 개발한 것이 환자의 건강 상태에 맞는, 쉽고 검증된 건강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인 ‘리터러시M’이다.
리터러시M을 다운받아 공동인증서로 로그인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연동해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와 처방약 내역을 가져온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여러 병원의 검사결과 기록들도 사진으로 찍으면 한눈에 들어오는 개인맞춤형 건강차트로 만들어준다. 또한 복약 일정은 물론 복용 중인 약물의 상세 정보와 주의사항, 임산부와 고령자의 경우 먹으면 안 될 약물까지 알려준다. 진료를 받을 때 이 앱을 보여주면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할 수도 있다.
CT·MRI·내시경 사진 해설, 해외 교포 의료상담도 계획 중
리터러시M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해외 동포들을 위한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2008~2010년 미국에서 교환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한인교회에서 한국의 내과의사라 하니 모두 제게 상담받길 원하더군요. 수십 년을 미국에서 살았어도 현지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은 편치 않은 거죠.”
이 대표는 해외의 의무기록과 약 처방전을 사진으로 찍어 입력하면 자동으로 번역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건강진단 검사지 같은 경우 러시아어로 돼 있는 데다 한국과는 주요 단위도 달라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내용을 리터러시M으로 찍어서 입력하면 어떤 약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검사결과도 알기 쉽게 한국식 단위로 변환해 준다.
또 하나 이 대표가 신경쓰는 부분은 유튜브 큐레이션이다. “요즘 환자들은 건강정보의 70%를 유튜브에서 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잘못된 정보나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십만 개의 건강 콘텐츠 중 의료진이 꼼꼼히 검증한 5천 개의 건강 동영상만을 엄선해 환자의 건강상태에 맞게 큐레이션해 제공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22년 경력의 베테랑 건강프로그램 방송작가를 영입했고, 이 대표부터 직접 출연해 건강정보를 설명한다.
엔젤투자, 벤처캐피털 투자까지 확보한 이 대표는 5월 말 신장학회 부스를 통한 소개를 시작으로 리터러시M 앱을 정식으로 출시하고 본격적인 성장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올해 리터러시M의 목표는 ‘고령환자의 약물 사용량 줄이기’입니다. 고령환자의 약물 과용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과 앱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약은 적게 먹을수록 건강에 좋습니다.”
현재 혈액·소변 검사, 혈압, 혈당 등의 데이터만 수집해 보여주고 있는 리터러시M 앱은 앞으로 병원에서 찍은 CT, MRI, 내시경 사진 등의 이미지 파일도 쉽게 저장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미지가 어떤 의미인지 해설해 보여줄 예정이다. 또 해외 유학생, 주재원, 교포들이 현지에서 받은 검사결과나 약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국내 의료진과 상담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의료 문맹은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리터러시M을 세계인이 언어장벽을 극복하고 자유롭게 이용하는 의료정보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꿈입니다.”
이처럼 의료환경의 문제를 잘 이해하는 의사들이 창업에 더 나설수록 국민 건강 지표가 좋아지고 의료 재정도 절약될 수 있다. 정부가 의사들의 창업환경 개선에도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