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심리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리 로스는 인간의 이기적인 선택을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살짝 비틀어봤다. 그는 두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에는 ‘공동체 게임(community game)’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집단에는 ‘월 스트리트 게임(Wall Street game)’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냥 이렇게 말만 했을 뿐인데, 애초 그다지 다를 게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로 나뉜 두 집단의 반응은 극적으로 달랐다. 공동체 게임을 한다고 들은 사람의 약 70%는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길 선택했다. (30%는 달랐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 게임을 한다고 들은 사람은 33% 정도만 협력했다. 이 결과를 기억하고서 다른 심리 실험도 살펴보자.
경제학자 아이리스 보넷과 브루노 프라이의 실험도 흥미롭다. 이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학생들을 모집해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A그룹에게 각각 10달러씩을 준 다음,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고 나머지는 B그룹 누군가의 봉투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A그룹 학생이 10달러를 모두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A그룹 학생 가운데 B그룹 학생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학생은 28%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3분의 2가 넘는 학생은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걱정이 전혀 없는데도 10달러를 모조리 갖는 이기적인 행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약 서로 안면이라도 있는 경우는 어떨까?
보넷과 프라이는 두 그룹 학생이 서로 얼굴만 한 번씩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두 그룹의 학생이 다시 만날 일은 없고, 역시 누가 어떤 봉투를 줬는지 또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얼굴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한 푼도 주지 않은 A그룹 학생의 비율은 28%에서 11%로 떨어졌고, B그룹 학생에게 주는 평균 금액도 늘어났다.
이어지는 실험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A그룹 학생에게 B그룹 학생의 전공, 취미와 같은 개인 정보를 알려줬다. 그러자 놀랍게도 B그룹 학생이 받은 평균 금액은 10달러의 절반인 5달러로 늘었다. 한 푼도 주지 않은 A그룹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거나 간단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협력의 정도가 커졌다.
이런 심리 실험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애초 ‘신뢰’가 중요하다는 신호만 줘도(커뮤니티 게임) 혹은 자신의 평판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에 놓이도록 하면 대다수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 심지어 딱 한 번 얼굴을 마주치는 것으로도 이런 효과가 생긴다. 설사 그것이 자발적이지 않더라도 알 게 뭔가? 어차피 사람 속은 알 도리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바로 ‘착한 30%’와 ‘나쁜 30%’다. 인정사정없는 월스트리트 게임을 한다는 신호에도 33%는 여전히 협력을 선택했다(착한 30%). 반면에 신뢰를 강조하며 공동체 게임을 한다고 해도 30%는 자기만 챙겼다. 또 10달러를 모조리 가져가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 상황에서 얌체처럼 그 돈을 모조리 챙긴 28%가 있었다(나쁜 30%).
여기서부터는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본 가설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든 타인을 배려할 준비가 돼 있는 30%와 그런 마음 따위는 없는 30%, 그리고 그 양극단 사이의 40%로 구성됐다. 그런데 남을 도울 마음 따위는 없는 30%마저도 평판이 나빠질 위험이 생기면 기꺼이 타인을 배려하는 척이라도 한다(보넷과 프라이의 실험).
나는 이것이야말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애초 선한지(성선설) 악한지(성악설) 따위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설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보다 공동체를 배려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일은 그 악한이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압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