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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서퍼의 영혼을 갖고 싶어
김혼비 에세이스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다정소감』 저자 2022년 07월호


수상스포츠의 계절, 여름이 왔다! 그리고 이렇게 문장 끝에 느낌표까지 찍어놓고 바로 고백하기 좀 그렇지만 사실 나는 저 문장을 정말 영혼 없이 썼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수상스포츠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물에 흠씬 ‘젖어 있는’ 느낌을 싫어해서도 그렇다. (수영이나 스킨스쿠버처럼 물에 ‘잠겨 있는’ 느낌은 또 괜찮다. 하지만 둘 다 일단 물에서 나오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기까지 얼마간 ‘젖어 있는’ 상태에 머물러야 해서 결국 싫어한다.) 나에게 호수나 바다는 바라보는 ‘대상’이지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며, 하물며 물 안에서도 아니고 왜 굳이 물 위에서 놀아야 한단 말인가. 베드로도 아니고. 물침대 위조차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수상스포츠 이야기만 나오면 뭐가 뭔지 구분도 잘 못하는 나에게 언젠가 A가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려줬다. 모터보트 뒤에 매달린 게 스키면 수상스키, 보드면 웨이크보드, 보트면 바나나보트이고, 모터보트를 축소해서 타는 게 제트스키, 아이언맨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플라잉보드, 그 밖에 무동력 스포츠로 래프팅, 카약, 서핑, 끝!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참고해 보자.)

그 A가 요 몇 년 푹 빠져 있는 게 바로 서핑이다. 언젠가부터 어쩌다 메시지라도 주고받을라치면 그는 거의 대부분 양양에 있었고, 하와이로 서핑여행을 계획 중이다. 그가 서핑의 종류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정리해 준 적이 있는데 ‘이럴 수가, 서핑에도 이렇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니!’ 놀랐던 느낌만이 기억에 남았다(앞에서 말한 ‘웨이크보드’도 서핑의 한 종류였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 다이앤 카드웰이 쓴 『로커웨이, 이토록 멋진 일상』을 읽으면서 A와 A를 통해 건너 듣곤 했던 그의 서퍼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파도라는 거대한 자연을 계속 마주하면서 세상에는 자연의 법칙처럼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진실을, 그 ‘어떻게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무수한 실패를 기껍고 유쾌하게 견디는 낙천을, 그럴 때 생기는 자유를,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서일까. 서핑을 오랜 시간 진지하게 해온 서퍼들(‘진지하게’라고 굳이 쓴 이유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만 보고 가볍게 뛰어든 사람들 또한 많다는 이야기를 A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에게는 특유의 ‘바이브’가 있는 것 같다. 가끔씩 파도처럼 삶을 덮치는 어떤 장애물이나 변수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당황하거나 자기연민하지 않고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융통성 있게 헤쳐가는 유연함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단호함이 섞인 어떤 에너지.

우리는 서핑이 불러서, 바다가 당겨서, 로커웨이의 다듬어지지 않은 묘한 평화로움이 좋아서 이곳에 왔다. (......) 서퍼들은 사실 내가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고 야심만만한 사람들에 속했다.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추구하는 야심의 대상이 돈이 아니라 파도일 뿐이었다. -p.254

사실 나는 여전히 수상스포츠가 싫고, 많은 이들을 서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파도 밖으로 튀어 오르는 몇 초 동안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것 같다는 우주적인 쾌감이나 물결이 주는 위로 같은 감각들이 그리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서퍼들의 영혼, 그 초연한 리듬만큼은 더욱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언젠가 서핑을 배워봐야겠다는, 나도 A도 깜짝 놀란 결심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 만듦새만큼이나(‘올해의 책 디자인상’ 후보라고 생각한다) 마성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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