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는 내년 4월 30일 차기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오는 12월 열리는 당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 것은 우리 정치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네거티브 소재는 많이 다르다.
내수시장 미발달, 지리적 입지 등으로 밀수·마약이 정치·경제 전반에 스며들어 있어
집권 여당인 콜로라도당은 대통령 후보(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포함) 및 당 총재를 오는 12월 18일 한날에 선출한다. 이번 당 총재 선거에서는 콜로라도당 양대 계파의 보스인 전현직 대통령이 맞붙는다. 오라시오 카르테스 전 대통령(2013~2018년)이 총재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마리오 압도 현 대통령(2018~2023년)도 총재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헌법상 겸직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16년 전 대통령이 총재에 당선되고 3시간 만에 심복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준 선례가 있다. 압도 대통령은 자신의 계파에서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총재 자리를 상대 계파에 내주는 것보다는 위헌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 낫다는 계산을 했음이 분명하다.
지난 1월 아르날도 주치오 내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카르테스 전 대통령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의 서막을 올렸다. 그는 카르테스 전 대통령이 소유한 카르테스 그룹 계열의 담배회사(파라과이 납세 2위 기업)에서 생산된 담배 상당량이 브라질, 멕시코 등 해외로 밀반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르테스 전 대통령계의 대선 후보 산티아고 페냐 전 재무장관을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당 내 최대 정파인 카르테스 계파는 바로 반격을 이어가 오히려 현직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주치오 내무장관이 브라질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공개됐는데, 문제는 브라질에 수감 중인 거물 마약상이 주치오 내무장관에게 렌트카를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었다. 주치오 내무장관은 바로 경질된다. 이어서 항구를 관할하는 해군기지 심야시간에 밀수품 운반트럭이 출입하는 장면이 녹화된 CCTV가 공개됐다. 해군 사령관은 현 대통령 계보의 대선 후보 우고 벨라스케스 부통령의 친동생이다. 밀수범 뒤를 봐주는 것이 현 부통령 가족임이 드러나 ‘이슈를 이슈로 덮는 상황’이 연출된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EU, 우루과이 당국이 합동수사하던 마약사건에 현직 장관 1명, 하원의원 1명도 연루돼 줄사퇴하게 된다. 현 대통령은 더 강력한 네거티브를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한편 위 마약사건을 담당한 현직 검사가 콜롬비아에서 신혼여행 중 백주에 청부살해돼 파라과이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청부살인에 가담한 5명이 사건 한 달 뒤인 6월 초 체포됐다.
이처럼 정치적 네거티브 공격의 소재가 될 만큼 밀수·마약은 파라과이 정치·경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파라과이는 인구 약 730만 명으로 내수시장이 작아 제조업이 발달하기 힘든 데다 제조업이 발달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내륙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어 공산품 밀수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마약의 경우는 파라과이가 환적지 역할을 주로 한다. 페루, 볼리비아 등 마약 생산국과 브라질 등 마약 중간상 국가 옆에 위치해 있어 느슨한 국경통제, 허술한 수출통관 등으로 마약을 유럽으로 환적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마약·밀수 등을 단속해야 할 경찰, 세관 등 단속 공무원 상당수가 관련 상인들과 유착돼 있다. 공무원의 박봉이 유착의 시작이었겠지만, 이러한 유착이 오랜 기간 계속되면서 공생 시스템으로 발전돼 버린 것이다.
밀수상·마약상들은 돈세탁을 주목적으로 합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업체들이 정치자금원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정치자금을 받다 보면 훗날 대통령이 돼도 마약상과의 거래를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가 있다. 올해 1월 퇴임한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2014~2022년)은 현재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그는 2004년부터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재배된 마약이 온두라스를 거쳐 미국으로 밀반입되는 것을 지원했다고 한다.
최근 파라과이 국회를 통과한, 지자체장 피선거권을 22세로 두 살 낮추는 법안을 놓고 정치자금이 궁한 젊은 정치후보생들이 마약상들과 유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언론의 우려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파라과이 국경무역 대도시의 현직 시장이 대낮에 총기 피격을 받아 살해되는 사건이 지난 5월에 발생했다. 현직 검사 살해사건에 연이어 발생한 이 사건은 마약조직이 정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전문가들은 파라과이 상황이 아직은 멕시코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브라질 최대 범죄조직 PCC파가 파라과이 마약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브라질 당국과의 공조가 이뤄지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낙관론이 그러한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여당 계파 싸움 속 좌파 야당은 단일 후보 선출, 여당 지지자들은 경선 후 ‘원 팀’ 이뤄 장기집권 희망
다시 여당을 살펴보자. 재벌 총수인 카르테스는 정치 입문 4년차인 2013년 대통령에 전격 당선됐다. 여당 전통 주류에서는 카르테스를 아직도 ‘아웃사이더’로 볼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전통 주류가 이기면서 1승 1패가 됐다. 전통 주류 출신 압도 대통령은 취임 후 현재까지 두 번에 걸쳐서 국회에서 탄핵 위기를 맞았었다. 그때마다 하원 최대 의석을 보유한 전 대통령 계파에서 앞장서 탄핵을 막아줬다.
그런데 몇 달간 잠잠하던 네거티브가 6월 들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정부 당국이 그간 내사한 ‘카르테스 전 대통령 그룹사의 밀수 및 돈세탁’에 대한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돼 대서특필된 것이다. 카르테스 계파에서는 정치적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 내용 상당부분이 이미 공개된 정보인지라 카르테스 계파를 침몰시킬 결정적인 한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 나서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한 여당은 후보 간 비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2월 경선을 맞을 듯하다. 여당 지지자들 입장에선 경선 이후 대선에서 두 계보가 ‘원 팀’이 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원 팀’이 된다면 장기집권(2013~2028년)으로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제1야당 및 군소야당, 지방의 정치운동세력들은 단일화를 추진 중이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 61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바 있는 좌파 야당은 이미 단일화 후보를 선출했다.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려면 범야권 세력 단일화는 필수고, 집권 여당의 분열도 필요하다. 범야권이 단일화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끝으로 파라과이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다. 카르테스 계파의 담배 밀수 및 돈세탁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미국은 관망하고 있다. 카르테스 계보의 대선후보가 시내에 걸어놓은 플래카드에는 ‘차비스모(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이념, 즉 포퓰리즘) 없는 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야당을 차베스 좌파로 규정하는 이념 프레임 전쟁이다. 경선 및 대선이 임박할수록 새로운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아직까지는 후보별 경제 공약이 없다. 경제 공약은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