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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미식제로가 좋다는데 어쩔티비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탐식생활』 저자, 콘텐츠 에이전시 ‘포르테’ 대표 2022년 07월호


요즘 음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제로’다. 없는 것을 마시는 것이 어찌하여 마시는 일인가. 다소 어리둥절한 말이다. ‘마이너스’로 이해하면 조금 더 고개를 끄덕이기 쉬워질 터다. 무엇인가를 자꾸만 빼서 없애는 태도는 ‘더 맛있는 것을 추구’하던 과거의 관행과는 달라졌다. 그보다는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음료의 정의다. 

선풍적인 제로의 물결이 향한 첫 번째 가치는 당(糖)이다. 제로 칼로리, 슈가 프리, 액상과당 프리다. 설탕이 일제히 빠졌다. 액상과당, 쓰지 않는다. 식품 공학의 혁혁한 발전이 설탕 없이도 달고 맛있는 먹거리를 대체 생산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제로 열풍이 전방위적으로 패러다임을 뒤엎고 있다. 맛으로도 빠지지 않는 제로 슈가, 제로 칼로리가 음료 코너를 대대적으로 몰아친다. “맛을 재는 단위가 왜 없어? 칼로리야.”라고 한 만화 속 고양이 가필드의 명언도 이제 색이 바랠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인 것이 탄산음료다. 달콤한 맛에 오묘한 향, 청량한 탄산감을 무기로 특히 10대, 20대의 생명수로 큰 파이를 유지하고 있는 시장에서다. 상위포식자 개념인 콜라와 사이다가 스타트를 끊었다. 코카콜라가 일찍이 2006년부터 코카콜라 제로로 제로 탄산음료 시장을 촉발했다. 롯데칠성이 가세했다. 펩시콜라와 칠성사이다의 제로 버전이 나왔다. 밀키스도 제로 제품이 곧 나올 거라 한다. 메이저 경쟁사인 롯데칠성의 패기에 대응해 코카콜라는 스프라이트의 제로 버전을 내놨다. 광고를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롯데칠성이 파워풀한 모델을 기용하고 요란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무려 아이유가 펩시의 모델이 됐다. 오래간만에 신곡을 낸 싸이는 감쪽같은 가상인간 ‘류이드’와 함께 칠성사이다를 광고한다. 코카콜라는 싱어송라이터 ‘비비’를 기용해 독창적인 정체성을 강조했다. 
콜라, 사이다 외 음료도 제로화되고 있다. 롯데칠성은 ‘탐스’ 세 가지 맛의 제로 리뉴얼 버전을 내놨다. 광고 모델 걸그룹 에스파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중이다. 농심의 웰치스는 각각 포도 맛, 오렌지 맛 제로 버전으로, 웅진식품은 ‘815피즈 제로’와 ‘티즐 스파클링’으로 각각 새로운 시장에서 파이를 넓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코카콜라의 파워에이드는 설탕과 칼로리를 뺐다. 동원F&B가 ‘보성홍차 아이스티 제로’를 새로 내놨고, 쟈뎅의 ‘아워티’는 기존 제품을 제로 칼로리로 리뉴얼했다. 수험생과 취준생, 직장인들의 각성을 담당하는 에너지드링크에서의 제로 경쟁도 못지않다. 롯데칠성 핫식스, LG생활건강 몬스터에너지, 동서음료 레드불이 일제히 0에 수렴하는 칼로리로 열량을 낮춘 제로 버전을 선보였다. 

알코올 빠진 맥주라는 모순

알코올음료도 새로운 대세는 ‘제로’다. 전 국민의 음주 습관인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10도대 초반으로 내려앉은 그간의 변화가 극단적으로 터진 것이 무알코올·논알코올 맥주다. 맥주인데, 알코올이 없다. 또는 1도 미만으로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맥주의 도수는 대개 4도 정도다. 크래프트 맥주 중에선 7도나, 아니면 10도를 넘어가는 것도 종종 있다. 그것이 모두 0으로 수렴한다. “이것은 맥주가 아니다.” 파이프를 놓고도 파이프가 아니라고 했던 미셸 푸코가 소환될 지경이다.

태곳적부터 임산부들 사이에선 무알코올과 논알코올의 국세청 관점 차이를 상식처럼 누구나 알 정도였다. 주류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은 모두가 알코올 없는 맥주를 외면했던 시절에조차 맘카페에선 무알코올 맥주를 공동구매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외에도 투병 중이거나 회복 중인 환자까지, 필요에 의한 소수 향유층만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알코올 없는 맥주는 보다 광범위한 소비 취향으로 정착했다. “취하기는 싫고, 마시고는 싶다”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MZ세대의 탈음주 문화와도 궤가 맞물린다. MZ에 속하지 않는 나 역시 생맥주 정도는 분별없이 무한정 마시곤 했는데, 요즘은 술이 술을 마시는 정신 나간 상태가 전혀 즐겁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논알코올 맥주를 온라인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주류전문 매장에서 박스째 사 오기도 한다. 공정상 피치 못하게 나는 들큼한 단맛이 불쾌해 나쁜 인상을 남기는 종류도 꽤 있었지만, 이것저것 마셔보다 보니 맛있다고까지는 못하더라도 마실 만한 것이 꽤 많아 입맛을 들였다. 알코올 없는 맥주도 맥주라는 모순적 가설은 실화가 돼가고 있다. 

우선, 알코올 없는 맥주는 「주세법」 상 두 종류다. 알코올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무알코올 맥주는 이해하기 쉽다. 영어로 멋있게 표현된 논알코올 맥주는 알코올이 1도 미만으로 미미하게 들어 있다. 알코올음료로 간주하기엔 알코올 함량이 너무 적어서, 이런 게 알코올음료는 아니(non)라고 구분 짓는 의도로 이해하자. 소비자 입장에선 혼용되는 개념이므로, 아래부터는 편의상 무알코올 맥주로 통일해 쓰겠다. 

무알코올 맥주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였던 대기업들로부터 시작해, 수입 맥주 회사들도 무알코올 맥주를 속속 내놓는다. 심지어 맥주에 진심인 작은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조차 무알코올 맥주를 내놓고 있다. 탄산음료에서 제로 열풍이 부는 것만큼은 아니다. 여전히 술은 알코올을 듬뿍 포함한 것이 그 존재의 정의니까. 그러나 엄연히 맥주시장에서 무알코올의 새바람은 새로운 성장 동력, 미래 먹거리쯤으로 여겨진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시장은 2012년 13억 원 규모였다. 2021년엔 200억 원으로 커졌다. 맥주시장에선 2025년에는 그 규모가 2천억 원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의 의미는 세대교체

음료나 맥주나, 산업은 왜 자꾸만 뭘 없애는가. 빼야 했던 것은 사실 구태, 매너리즘이다. 인공감미료가 보다 정교해져 예전보다 더 좋은 성능을 내자 ‘제로’라는 새로운 지평선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 구태의연했던 시장을 뒤집을 기회의 땅이 열린 것이다. 엘도라도를 향하는 대항해 시대 열강의 범선들처럼, 기업들이 제로음료시장을 향해 항속을 올리고 있다. 주류산업 역시 마찬가지. 새로운 매출이 약속된 땅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는 모습이다.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 수요가 먼저일까, 시장 개척이 먼저일까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영원한 난제다. 내 생각엔 수요가 먼저였다. 각종 음료의 풍부한 칼로리는 이전과 다른 가치로 생각하게 됐다. 이전엔 영양 보충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약효 등 기능적인 부분도 시초엔 명확한 셀링 포인트였을 것이다. 안팎으로 건강한 몸을 다행히도 일찍부터 만드는 젊은 세대에게 음료의 칼로리는 아무 의미 없는 장해가 됐다. 술자리 외엔 친교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모습 역시 과거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꼭 취하지 않아도, 모두가 술에 취할 때 홀로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더라도 어울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의견, 아니면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 전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합법’이 됐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전히 똑같은 음료만, 똑같은 맥주만 골라잡으며 칼로리와 알코올에 취해 삐딱하게 팔짱이나 끼고 “그래도 콜라는 이 맛이지!”, “그래도 맥주는 시원한 탄산에 살살 취하는 맛이지!”라는 옛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면,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닌 아집의 문제다.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새로운 것을 즐기고 있다면, 거기엔 분명 새로운 장점이 있다. 하긴, “말세다 말세야!”라는 말은 어떤 시대에나 그렇게 한탄하는 화자의 세대가 뒤안길로 밀려났다는 무의식의 자백이었다. 다른 사람은 제로음료가 좋다는데, 다른 세대는 알코올 없는 맥주가 좋다는데 그조차 인정할 수 없다면, 꼰대가 어쩔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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