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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SG의 모든 것탄소중립은 마라톤처럼
김재필 KT 수석연구원 2022년 08월호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전 세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미국 정부는 다급하게 정유사에 공급 확대를 요구했지만, 정유사들은 입을 모아 이미 한계치에 이르렀다며 더 이상의 생산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원유를 정제하는 미국 내 정유시설 상당수가 가동을 멈추거나 용도를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미국 내 정유공장 5개가 폐쇄돼 원유정제 용량은 5%나 감소했고, 이 때문에 하루 석유생산량이 100만 배럴 이상 줄어들어 남아 있는 정제시설들이 수요를 감당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유사들이 정제설비 개선을 주저하는 이유는 몇 년 전부터 추진해 온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맞물려 차세대 에너지로의 전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정유사들은 40~50년 된 정제설비에 재투자하는 대신 공장 가동 중단을 택했다. 상당수 정유시설이 머지않은 미래에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시설 개선에 부담을 느낀 것이다. 

석유뿐 아니라 친환경 재생에너지 발전과 전기차에 필수적인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다. 친환경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장비 생산이 늘어나며 각종 금속 원자재 수요도 늘어났다.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 풍력발전용 타워에 쓰이는 알루미늄은 최대 생산지인 중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제련공장 가동을 줄이면서 2020년 말 1톤당 2천 달러에서 2021년 9월 기준 2,851달러까지 상승했다. 구리 역시 전 세계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칠레와 페루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해 채굴이 위축되며 1톤당 1만 달러까지 급등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이 공교롭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과 맞물리면서 심각한 공급난을 촉발하고,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에 따른 원자재 수급 불균형으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그린플레이션’이라 한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gree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그린플레이션의 심화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더욱 가속화한다. 에너지와 각종 원자재 가격의 인상은 반도체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반도체 가격 인상은 휴대폰부터 자동차까지 연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친환경 정책의 속도를 높일수록 화석연료 사용은 더 늘어난다. 태양광과 풍력 등의 친환경 에너지는 기후 영향에 따라 발전량 차이가 있어, 이런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화석연료발전소 가동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후변화로 유럽 북해의 풍력발전량이 크게 줄었는데, 그 사이 러시아가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동결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결국 유럽은 대체재로 석탄을 사용했고, 석탄발전 공급량이 전년 대비 22%나 증가했다. 

ESG 중에서 환경(E), 특히 탄소중립은 마라톤과 같다. 1, 2년 반짝 실행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린플레이션은 거쳐갈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그린플레이션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전쟁,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는 적절한 속도 조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길가의 물웅덩이에 빠진 물고기에게는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인 물고기에게 드넓은 바다를 꿈꾸라며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숨을 돌려야 그다음에 강이든 바다든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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