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집이나 학교 혹은 직장의 공간 모습은 여러 이유로 다양하기보다 비슷비슷하게 유지돼 왔다. 그나마 상업공간은 패션처럼 유행에 민감해 자주 바뀌다 보니 다른 종류의 공간들에 비해 더 나은 공간이라는 잠재의식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조금 다른 느낌의 공간에 대한 표현이 대개 “여기 카페 같아!” 혹은 “카페같이 꾸며주세요!”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경제력이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조금은 다른 공간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집·학교가 아닌 제3의 공간으로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
어린이와 청소년이 사는 제1의 공간 집, 그리고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제2의 공간인 학교는 당장에 바뀌기 어렵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3의 공간인 도서관 등은 그들에게 보다 다른 ‘생각’과 ‘감각’을 촉진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건축가로서 ‘다음 세대를 위한’ 도서관과 놀이터 등을 설계해 오고 있다. 설계의 과정에는 ‘사용자 참여’라는 단계가 있어서 이용자인 어린이·청소년 그리고 사서 등 운영진이 현재 상태의 분석, 개선안 및 희망사항 제시, 아이디어의 단계적 발전, 구성원 내에서의 의견 조정 등을 함께 하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입장에선 입시제도에 기반한 학업시스템으로 채워진 학교나, 천편일률적인 주거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은 공간적으로는 오히려 더 열악한 피시방, 편의점 등 상가시설밖에 없다. 이럴 때 놀이터, 도서관, 청소년센터, 박물관 같은 제3의 공간이 그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당장의 신체·심리·정신·감수성 측면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이들이 훗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해 더 나은 도시와 시민사회를 꿈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제3의 공간들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단지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남기는 정도의 공간이 아닌, 내가 구성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공간은 매일 일상을 보내도 즐겁고,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간사용법을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간을 타고 커뮤니티가 살아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도서관 공간 조성에서의 이러한 사용자 참여 과정(우리는 이것을 ‘참여설계 워크숍’이라 부른다)이 실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설계를 하는 건축가 활동의 일부일 때 그 의미는 배가된다. 도서관은 ‘미래의 공간’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 유형을 사용자들과 함께 만들어냈을 때 자꾸 오고 싶은 공간, 그리고 사용자들의 미래를 자극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새로운 공간 유형이란 놀이터, 만화방, 노래방, 메이커스페이스 등으로 ‘구분된’ 실이나 방이 아닐 수 있다. 벽으로 구분된 공간은 그것의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고 그것에 접근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폐쇄적인 곳이 되기 십상이다. 이는 상업공간의 방식이다. 공간이 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서로 연결돼 있으면서 시선과 높낮이, 동선과 재료 등으로 구별돼 있다면 조금은 느슨하게 탐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가지 활동만 가능했던 곳이 열 가지, 스무 가지 넘는 활동들로 채워질 수 있고 그에 맞는 장소를 사용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들은 누가 ‘시켜서’ 할 때보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낼 때 좀 더 집중력 있게 그리고 더욱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놀이와 독서는 반대가 아니며, 사색과 악기 연주는 동떨어진 활동이 아니다. 이를 서포트하는 공간은 그래서 세심하게 계획돼야 하고 사용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건축, 존재하지 않는 꿈을 담는 공간을 만드는 것
놀이동산과 도서관은 많이 다를까? 두 장소 다 놀이와 배움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같다. 방식은 다르지만 새로운 탐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놀이동산은 철저하게 현실 세상과 단절돼 있다. 그러나 도서관은 우리 마을과 도시와 기능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연결돼 있다. 그래서 건축가인 우리는 도서관이 바깥세상과 차단된 완벽한 동화 속 나라가 되는 것을 지양한다. 우주를 탐험하는 것 같이 다음 세대들이 그들의 도서관 공간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동네를 바라볼 수 있고 오갈 수 있어야 하며, 탐험을 위한 쉼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
다음 세대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공공기관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재단 같은 민간기관이 협력할 때 더욱 보완될 수 있다. 그 경우 공간을 시공하는 예산을 제공하는 것보다 공간을 설계할 건축가나 디자이너 비용, 앞서 말한 다음 세대와 함께 하는 워크숍의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이러한 공간 구성에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기계적인 수치로 계산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료가 아무리 충실하고 분석이 철저해도 건축가의 의지와 개념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특히나 ‘다음 세대’를 위한 건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꿈을 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용자 참여의 단계에 건축가의 인풋, 더 나아가 건축가의 기획 능력이 중요하다. 그에 앞서서는 건축가의 ‘공감’ 능력 또한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 영역에 다양한 활동과 감성을 담을 수 있어야 진정한 청소년 공간이 될 것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공간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면 집이나 학교 그리고 학원, 피시방 같은 상업공간에서 배우는 가치는 아쉽게도 대단히 현실적이다. 조금 다른 공공공간인 도서관이나 놀이터는 그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다른 시선을 공간적으로 전할 수 있다. 공간 내에서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이런 곳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스스로의 탐험을 통해 그들이 성장했을 때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현실의 우리 동네와 도시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