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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라이프 #키워드원도심 재생에 진심인 편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08월호


부침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인천의 옛 개항장이 자리한 신포동. 신포동 골목은 요즘 ‘인천의 핫플레이스’로 불린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다란 골목길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출입문을 열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타임슬립이 시작된다.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세계로 떠나는 짧은 시간여행, 그 속에 음악을 매개로 시대와 사람을 연결한 ‘인천여관X루비살롱’ 이규영 대표가 있다. 

선원들이 묵던 여관이 힙스터들의 
문화 성지로

 
모두가 떠난 자리, 옛 명성을 잃은 도시. 남은 것들마저 사라지려 하는 그곳으로 그가 돌아왔다. 문화기획자 이규영 대표다. 인천여관X루비살롱.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1965년 지어져 먼 길을 떠나는 선원들이 묵곤 했다는 인천여관은 1990년대 들어서 최신식 숙박시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문을 닫고 10년간 버려졌다. 잊혀졌던 이곳이 ‘힙스터들의 성지’로 다시 부활한 것은 2017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다. 레트로 무드의 카페이자 전시장, 공연장으로 변신한 공간은 지역주민들의 교류의 장이자 전국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SNS 명소’가 됐다. 

루비살롱을 품은 인천여관의 새 주인 이규영 대표는 20대에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삐딱한 폼으로 베이스를 연주하다 2008년부터 라이브클럽 루비살롱을 운영하면서 제작, 기획 영역에 발을 들여놨다. “20대에는 뮤지션으로 홍대에 공연하러 갔었고, 30대엔 인천 부평에서 공연장 루비살롱을 운영했어요. 2011년 공연장이 문을 닫으면서 서울 홍대로 옮겨 음반 레이블 루비레코드 운영을 시작했고, 현재는 루비레코드와 인천여관X루비살롱을 오가고 있습니다.” 

홍대의 인기 레이블로 자리 잡은 루비레코드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루비살롱을 되살려보자는 취지로 여관 건물을 재생했다. 어머니의 고향인 인천이 이규영 대표를 불렀고, 일본에서 ‘재생건축’을 공부한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가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숨이 식어가던 공간은 그렇게 새로운 숨결을 통해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엄청난 심폐소생술이었다. 

“공간을 재생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원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었어요. 기존 건물이 품고 있던 역사와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재현하고 싶었거든요.” 하드웨어는 그대로 살리되 콘텐츠는 풍성하게 채워 넣고자 했다. 인천여관 1층은 1960년대 선원들이 묵던 여관 콘셉트의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루비살롱 1층은 펍으로 루비레코드 발매 음감회나 공연 등이 이뤄지고 2층은 사무실과 녹음실로 사용된다. 형식적으로는 기능이 구분돼 있지만 여관과 살롱의 모든 공간이 자유로운 쉼터다. 기존 여관 건물의 방과 화장실은 그 시절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다. 2층은 특히 흥미롭다. 50여 년 전 선원들이 노고를 달래던 방들이 세 개의 독립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창작 전시물을 선보이는 전시 공간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소모임을 가질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세월은 흠이 아닌 미덕이다. 여관 화장실의 깨진 타일 벽조차도 전시의 일부로 운치 있게 방문자들을 파고든다. 공간은 구석구석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갖가지 레트로 ‘희귀템’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자개장, 낡은 피아노, 자개 테이블, 간첩 신고 포스터와 브라운관에서 청춘을 뽐내던 옛 연예인들의 사진까지 자리한다. 음반 레이블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만큼 음악도 공간을 꾸미는 요소다. 한 공간을 빼곡히 채운 2천여 장의 LP는 1970~1980년대 음악감상실 분위기를 풍기며 또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가 됐다. LP 가게를 하다 디지털 문화에 밀려 문을 닫은 이 대표의 소장품들이 이곳을 채웠다. 

음원 스트리밍서비스 제공업체인 스포티파이를 통해 매주 2~3개씩 공개되는 플레이리스트로 이 공간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애초 특별한 콘셉트를 가지고 꾸민 것은 아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오히려 의미가 쌓이고 콘셉트가 명확해지더군요. 공간이 시간을 만나면서 무르익은 거지요.”

 

사라져가는 공간을 문화라는 창과 방패로 

인천여관X루비살롱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공간은 다름 아닌 ‘욕조’다.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원들이 몸을 녹이던 욕조야말로 최고의 포토존이다. 그 시절의 욕조를 그대로 살렸더니 인천여관 인증샷 필수 장소가 됐다. 

 
무엇이든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폐기처분되는 시대, 이 대표의 꿈은 옛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사라져가는 공간을 문화라는 창과 방패로 지키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요즘은 강제로 지워버리는 시대인 것 같아요. 딜리트(delete) 키를 누르듯 삭제가 너무도 쉽고 간단해진 시대에 오히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으로 고마운 것들이 있죠. 소소하지만 크나큰 위안이 되는 그런 공간들을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운영돼 온 인천여관은 8월부터 연극 극단의 프로젝트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보다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조금은 실험적인 행보다. “인천이라는 도시는 삶과 비슷한 것 같아요. 출발역인 인천역에서 꿈을 갖고 메인스트림에 도전하지만 저녁엔 별다른 성과 없이 녹초가 돼 종착역으로 돌아오지요. 무한반복되는 그 악보의 도돌이표 위에 노란 스마일이나 빨간 하트를 그려넣고 싶어요.” 

그는 요즘 정적이 익숙한 주변 이웃들에게 조용조용 재미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려면 작가와 뮤지션, 배우들이 더 많이 오랜 여관과 후미진 골목을 드나들어야 한다. 공간도, 사람도, 문화 콘텐츠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올해 8월부터는 인천시에서 만드는 음악창작소가 생겨서 그쪽으로도 오갈 예정입니다. 인천음악창작소 또한 부평 미군부대 철수 자리에 재생건축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지역 음악신(scene)에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벌써부터 오지 않은 작은 변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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