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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창기의 영화상담실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2년 08월호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깬다. 한밤중이다. 우리집 고양이 보리가 내 옆구리에 딱 붙어서 자고 있다. 열대야 더하기 38.5도. 고양이의 체온이 뜨거움의 원인이었다.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좋아하고 나는 더위를 싫어한다. 낮에는 그렇게 도도하던 보리는 밤만 되면 집요하게 나에게 구애하는 스토커다. 

에어컨을 켠다. 잠시 후 잠자던 아내는 이불을 끌어올리고, 보리는 벌떡 일어나 야옹거리며 안방 문을 열어달란다. 아내도 보리도 에어컨을 싫어한다. 나와 자는 존재들은 나와 정반대의 체질이다. 삐쳐서 방 밖으로 뛰쳐나갔던 보리가 몇 분 후 방문을 긁으며 다시 들여보내 달란다. 내가 에어컨을 끌 때까지 그렇게 나가고 들어오길 반복할 것이다. 

보리에게 항복한다. 이러다간 또 잠을 못 잘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거실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나와 보리가 내는 소리에 뒤척이는 아내에게 속삭인다. “고양이를 부탁해!” 보리는 곧 엄마 옆구리를 파고들며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보리가 다시 거실로 나와 내 옆에 누우며 야옹거린다. 선풍기를 끄라는 말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달달한 청춘영화가 아니다. 틀에 박힌 젊음의 여름스러움과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보는 이들에게 주인공에 대해 좀 더 깊이 느끼고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영화다. 우리가 기억하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 힘겹고 길었던 정체성의 정립과 현실에 대한 저항 그리고 수긍의 과정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내가 잘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잘 연결돼 있는가?’ 자문해 보라고 요구하는 영화다.

소녀에서 아가씨가 된 스무 살의 여자들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는 노래를 부르며 영화는 출발한다. 들뜨고 빠르고 명랑하리라는 예상은 바로 그다음 장면에서 빗나가고 만다. 곧바로 그녀들이 살아가고 있는 누추하고 답답하고 지저분하게 냉정한 현실들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과장된 감정 없이 관찰자의 시선으로,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안은 주인공들이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미건조하고 변함없이 반복되는 삶을 어떻게 인내하는지 보여준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뱅글뱅글 돌기를 반복하는 그릇 같은 하루의 연속을.

어떤 이는 보편적인 과정을 거쳐 숙련된 사회인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또 어떤 이는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계속 새로움을 찾아 떠나며 스스로가 ‘나’라고 믿는 자신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현실에 빨리 적응해서 사회적 성취를 이루려는 이는 사회의 모순이 안겨 주는 고통을 수긍하기로 결심한다. 반면 수긍을 거부하는 이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과 사람들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어느 쪽이었던가? 현재의 젊은이들은 어느 쪽을 더 많이 선택하는가? 그 선택이 내가 내린 선택이었던가?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특히 청춘은 고통스러운 선택의 반복을 강요당하는 시기다. 신체적 젊음을 즐길 수 있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극소수다. 청춘의 추억은 되돌아보면 아름답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낭만적인 추억들은 자기 보호를 위한 기억의 각색이다. 첫사랑, 황홀했던 첫 키스, 군데스리가에서 골을 넣던 추억처럼. 그래서 청춘의 기억은 여름의 기억처럼 화려하지만 짧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정답은 늘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삶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면서,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하며 사는 것이리라. 쉽지 않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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