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뮤지션이 누구세요?” 살면서 정말 자주 받았던 질문이다. 어쩔 수 없다. 직업을 음악평론가로 정한 이상 저 질문은 마치 떨쳐낼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방송이나 다른 글들을 통해서 자주 언급하긴 했지만 저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오직 한 명뿐이다. 그래. 맞다. 대안은 있을 수 없다. 바로 ‘신해철’이다.
처음 그의 음악을 접한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글쎄. 어떤 언어로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앞선다. 어쨌든 달랐다는 점만큼은 확실했다. 이를테면 이전까지 나는 음악이 재미있어서 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듣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들었다. 신승훈을 듣고 김건모도 들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뮤지션·밴드들의 음악이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뭐랄까. 신해철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전까지 음악은 나에게 일종의 쾌락이었다. 그렇다. 나는 무엇보다 즐거움을 획득하기 위해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행복감을 얻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신해철의 음악은 궤가 좀 달랐다. 거기에 쾌락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신해철의 음악을 통해 조금씩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결정타는 신해철의 솔로 2집 (1991)였다. 음반에서 가장 히트한 곡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였지만 내 선택은 그보다 뒤에 위치했다. 바로 ‘50년 후의 내 모습’과 ‘길 위에서’였다. 나는 지금도 이 두 곡의 가사를 앉은자리에서 바로 읊을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나/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알 수는 없었지만/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 ‘길 위에서’ 중
이후 나는 신해철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가 결성한 넥스트의 모든 앨범을 꼼꼼하게 다 듣고, 넥스트 해체 이후 발표한 음반들도 빠짐없이 감상했다. 그러고는 나만의 독후감을 썼다. 이즈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글쓰기를 좀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측면에서 신해철은 내가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을 갖는 데도 큰 역할을 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가히 내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은 스승이었다.
좋은 곡을 너무 많이 남긴 터라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하겠다.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최애곡을 몇 꼽는다면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와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4년 공개된 두 곡 모두 신해철 역사 전체를 통틀어 명곡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들을 때마다 벅찬 감동을 전해 주는 ‘Hope’(1995), 영화 사운드트랙 <정글 스토리>(1996)의 수록곡인 ‘절망에 관하여’, ‘Main Theme From Jungle Story-Part 1’ 등도 신해철이 얼마나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였는지 증명하는 곡들이다.
세상에 대한 신해철의 태도에 대해 적고 마무리하려 한다. 그는 설령 논란이 있더라도 지루한 평화에 안주하는 대신 논란의 핵심으로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행동함으로써 일부에게는 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숙명을 당당한 자세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더불어 내 경험에 의거해 말하자면 사석에서의 그는 누구보다 유머 감각이 넘치고, 가족을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그의 진짜 매력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가 진행한 라디오 애청자라면 이견 없이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2014년 10월 27일에 흘렸던 눈물을 잊지 않을 거라 장담하진 못하겠다. 그런 식으로 위선 떨기 싫어서다. 다만, 잊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다. 음악으로든 음악 외적으로든 그에게 내가, 더 나아가 우리가 빚진 게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