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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서의 문장들알면서도 모른다는 것
김혼비 에세이스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다정소감』 저자 2022년 09월호


2008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 사건이 실체를 드러내며 진원지인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금융계가 커다란 충격에 빠졌었다. 폰지사기는 새로운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배당을 지급하는 피라미드식 다단계 투자 사기 수법으로, 나도 이 사건 때문에 처음 알게 됐다. 쉽게 말하면, 내가 10%라는 놀라운 수익률에 혹해서 어느 증권사에 1억 원을 투자했고 1억 원이라는 나의 원금은 보존된 채로 매번 1천만 원의 수익금이 들어오는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의 1억 원은 기존 투자자들에게 10%를 지급하는 데에 쓰여 사라지고, 나에게 들어오는 10% 역시 나보다 뒤에 들어온 신규 투자자의 원금에서 오는 돈인 식이다. 그러니까 유입되는 자금으로 지급해야 할 액수를 더 이상 충당할 수 없게 돼 이 증권사가 무너지고 나면 그 누구도 원금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다. 버나드 메이도프가 벌인 이 폰지사기는 적발되지 않은 채로 무려 30여 년을 버티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자자들의 동시다발적 원금 상환 요구에 돌려줄 원금을 이미 다 써버린 메이도프가 자수하면서 드러났다. 피해액은 한화로 72조 원가량이었고,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날린 많은 투자자가 충격으로 사망하거나 자살한, 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참혹한 사건이다.

읽자마자 나에게도 그해 ‘올해의 책’이 됐던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독보적인 소설로 영미문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이 쓴 『글래스 호텔』은 바로 메이도프의 폰지사기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렇게 실화를 바탕으로 썼고 그 사실을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은 독자들이 사건의 결말과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이미 알고 읽게 된다는 점에서 자칫 맥이 빠지기 쉽지만, 맨델은 역시 대가답게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하면서 인간의 본질과 맞닿은 여러 의문을 던져놓고 하나씩 탐색해 나간다. 이를테면 노련한 투자자라면 진작 눈치챘어야 마땅한 터무니없는 펀드에 어떻게 그 긴 세월 동안 그 수많은 영리한 사람들이 기만당할 수 있는지, 돈이라는 막강한 물질이 각 인물의 삶을 작동시키는 가치관과 욕망을 만나 어떤 각양각색의 결과를 빚어내는지, 한순간에 저지른 잘못을 제대로 대면하지 않기 위해 인간은 미필적 고의의 굴레에 어디까지 얽혀들 수 있는지 같은 문제들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건 사기행각을 벌인 알카이티스(메이도프에 해당하는 인물)와 다섯 명의 조력자에 대한 부분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게 가능하긴 합니다.” 후일 오스카가 반대신문에서 증언했다.(......) 우리 중 일부는, 그 이중적인 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것, 영예로우면서도 영예롭지 못한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악인이라는 범주 내에서 어떻게든 좋은 축에 속하려고 애쓰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p.213

그들은 흔히 생각하는 악인들이 아니다. 꽤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 그들의 삶에서 ‘폰지사기’ 부분만 도려내고 본다면.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그들 역시 스스로의 삶을 ‘폰지사기’ 부분만 도려내고 오랜 세월 봐왔다는 것. 맨델이 굉장한 밀도로 그들의 다중적인 면면을 담아낸 서술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알면서도 모르는” 상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마음속 어떤 부분이 과녁처럼 관통당하며 내가, 나아가 사회가 외면하는 윤리들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선득한 소설이다. 동시에 슬프도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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