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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별의 씨앗누구도 예민해진 노인을 탓할 수 없다
오찬호 『민낯들 -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2022년 09월호


한 지역의 도서관에서 강연을 할 때다. 질의응답을 받겠다고 하자 맨 앞줄에서 전혀 강의에 집중하지 않고 있던 한 노인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헛기침을 섞어가며 십여 분을 질문인지 호통인지 아니면 연설인지 모를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급기야 자기 말 끝나기가 무섭게 지팡이를 짚고 힘든 걸음으로 나가버렸다. 너무 무례하면 너무 어이가 없는지라, 어떤 사람도 제재하지 못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나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이런 경우와 곧잘 마주하는데, 공교롭게도 선을 심하게 넘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더 좁히자면, 전부가 할아버지였다. 한국사회의 특징상 아무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당당할 순 없을 거다. 무슨 말을 해도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무탈한 사람은 ‘남녀노소’ 중 일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어떤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노인을 묘사하는 태도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있음을 다른 강연을 하면서 뒤늦게 알았다. 내가 없는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그걸 굳이 지팡이를 짚는 모습으로 흉내 낼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노인 비하 아니냐며 다그쳐서 강연장이 약간 어색해졌다. 처음엔 어떤 노인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나인데 왜 저러는지 황당했지만 곧 사과했다. 사실이 어떠하든, 의도와 맥락이 무엇이든, 나는 노인의 이미지를 고정적으로 만드는 데 분명 기여했다. 

여기서, 세 살 아이도 떠올리는 지팡이를 든 노인의 이미지가 무슨 문제냐는 의문이 나올 만한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에서 노인 문제가 어떤 흐름으로 나타나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노인 문제는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 노인을 한심하게 여기는 풍토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사회는 노인을 어떻게 바라볼까? 늙었으니까 노(老)인이겠지만, 세상은 ‘늙었다고’ 타박한다. 젊음을 숭상하는 문화야 오래전부터였지만 ‘노인이 젊지 않다고’ 욕을 먹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70대가 70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주목받는 시대가 되면서 노인은 노인이라 홀대를 당한다. 

지방이 적고 근육이 많아야 건강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대부분 군살이 없고 탄탄하다.” 그런데 실제 마주하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대부분이 군살이 많고 탄탄하지 못하다. 게다가 피부는 늘어져 있다. 이 당연한 이치,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신체의 노화는 매우 과학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이를 거스르는 특별한 경우를 무작정 아름답게 묘사한다. 비례해서 그 반대편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근육이 많으면 건강해진다고 하면 될 내용에 굳이 ‘너는 군살이 많고 탄탄하지 못하니 죽어도 할 말 없다’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노인들은 늘 이런 세상과 마주한다. 키오스크 앞에선 땀이 뻘뻘 난다. 무인판매대라고 하면 될 것을 낯선 용어로 표현하는 세상이 야속하다. 사용해 본 적도 없는 결제방식을 고르라고 하니 어질어질하다. 디지털 시대에 성장하지 않았기에 노인들이 디지털 사용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세상은 이를 당연하게 배려해 주지 않는다. 늙어서 느린 건데, 느리다고 욕먹는다. 

아마 노인의 특징을 배려하지 않는 세상의 야속함 때문에 ‘노인을 노인으로 묘사하지 말라’고 따졌을 거다. 이론적으론 노인을 있는 그대로 다루지 않는 게 차별의 씨앗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 빈정거림의 대상이 됨을 느꼈을 당사자들은 지팡이‘를’ 짚는다는 표현을 지팡이‘나’로 받아들였을 거다. 그만큼 예민하다는 건데, 그들을 탓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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