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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미식여름도 가을도 가지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탐식생활』 저자, 콘텐츠 에이전시 ‘포르테’ 대표 2022년 09월호


여름 가지는 대단한 풍각쟁이다. 여름 땡볕과 흥건한 수분을 빨아들이고 왕성하게 훅 자란다. 속에 든 것이 고작 공기와 물투성이인 주제에 덩치만 장대하다. 품종 불문, 체형이 길쭉한 것은 길쭉한 대로 통통한 것은 통통한 대로 죄다 허풍이다. 찌고 튀기고 지지고 볶아서 먹자고 들면 그 많던 가지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수분과 공기가 제거된 거죽 한 줌만 남는다. 그래서 한여름 식탁 어디든 가지 반찬이 나왔다면 감사하며 먹을 일이다. 

나 역시 번번이 당한다. 2시간 전 채소 코너에서 3개짜리를 살까 5개짜리를 살까 과도한 양을 사지 않으려고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쪄서 나물을 무쳐놓고 보면 5개 아니라 10개를 샀어도 모자랐을 판이다. 기껏 잘 쪄놓고 툭 건드리기만 해도 증발해 버리는 수분이며 와르르 붕괴되는 공기층 때문에 어김없이 잔해만 남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여름 가지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속에 든 척하는 요망한 것들을 꿰뚫어 보고 본질인 거죽을 잘 남기면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엄청난 화력으로 달달 볶거나, 오븐이나 프라이팬 등 마른 불에 은근히 오래 굽거나, 한 김 찐 후에 짜거나 눌러 물기를 적절히 제거해 요리하면 맛있는 여름 가지 요리가 된다는 것이다. 수분 90% 이상인 여름 가지는 충분한 열과 물리적 충격을 가해 가지인 척하는 무의미한 수분을 제어하는 것이 맛의 요령이다. 가지솥밥을 해도, 가지나물을 해도, 가지구이를 해도, 라따뚜이를 해도 다 마찬가지다.

한편 가을 가지는 여름 가지와 존재론적으로 표정이 다르다. 물풍선이나 다름없는 여름 가지에 비해 원숙하다. 여름 가지를 손에 쥐었을 때와 좀 다른 느낌의 묵직함이 있다. 상대적으로 단단하게 속에 알맹이가 생긴 존재다. 볕도 온화해지고 물도 마르고, 아침저녁 일교차도 벌어진 날씨에 존재가 단련된 것이다. 견고하게 영근 덕분에 속살의 질감은 부드럽게 채워진다.
 
그래서 가을 가지가 가장 맛있다고 평가된다. ‘가을 가지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마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음식 만화에 자주 언급되는 일본 속담으로, 가을 가지가 그만큼 맛있으니 며느리 주기가 아깝다고 하는, 좀 치사한 의미다. 몸을 차게 하는 성질로 말미암은 속뜻도 있는데, 그건 더 치사해 굳이 언급도 않겠다. 
아무튼 속담의 주제가 될 정도로 가을 가지는 매력적인 식재료로 꼽힌다. 널리 퍼진 인식이 그러하고, 미식가들도 가을 가지를 노골적으로 편애한다. 자연에서 가지는 대개 7월부터 10월까지 내내 수확한다. 여름과 가을에 공평하게 난다는 의미다. 나는 모두가 가을 가지만 이야기할 때 여름 가지의 입장도 조금 신경 쓰이는 쪽이다. 

가지 운동장의 기울기는 불공평하다. 세간의 평가로만 보면 여름 가지가 무슨 못 먹는 수세미라도 되는 듯 취급하고 있다. 그래 봐야 가을 가지와 계절 차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충분히 맛있는 여름 가지에게 서운한 일이다. 환경을 잘 타고났을 뿐인 가을 가지처럼 운이 좋지는 않았지만, 여름 가지에게 주어진 환경이 여름인 것이 여름 가지의 잘못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름 가지의 단점은 그래 봐야 대수롭지 않아 약간의 도움으로 극복 가능한 핸디캡이다. 위에서 공들여 언급한 대로, 여름 가지엔 여름 가지 나름의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무엇보다도 시원시원한 한여름 가지냉국의 존재를 잠시 잊은 게 아닌지, 가지에 대한 편견에 대고 큰 소리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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