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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라이프 #키워드흔한 평범함으로 반짝이는 별이 된 공간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09월호













info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오전10시30분~오후6시,
일, 월, 화 휴관) 
☎ 063-905-2366

최근 장마로 물이 불어난 전주천 위에 놓인 남천교를 건넌다. 전주 한옥마을 건너편의 또 다른 한옥마을 ‘서학동 예술마을’이다. ‘서학동사진관’이라는 화살표를 쭉 따라간 골목 끝에는 약속처럼 서학동사진관이 있다. 여섯 살 아이 키만  한 낮은 대문을 열고 꽃과 풀들이 흐드러진 작은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갓 추출한 커피향 가득한 한옥 내부에서 서학동사진관이자 미술관의 옛 주인 김지연 관장과 새 주인이 된 이일순 작가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빛바랜 기억과 퇴색된 정서를 
즐거운 리듬으로 소환하는 한옥 전시관 


조금 혼란스러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공간이 있다. 서학동사진관을 보고 있자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이미 미지근해진 싸구려 커피 한 잔에 적당히 허기를 채우고, 아직 덜 갠 하늘을 수만 번 바라보고, 그래도 남은 것이 없어 텅 빈 자신을 잠그고 만다는 골방의 하찮은 시민들. 그는 노래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삼류 인생의 흔하디흔한 삶을. 서학동사진관이 주목하는 예술의 방향도 바로 이 초라한 존재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라진 정미소, 이제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폐역. 서학동사진관은 사진작가이자 문화활동가인 김지연 관장이 완성한 공간이다. 

“공동체박물관인 계남정미소를 그만두고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2012년이었죠. 서울에서 아는 이가 전주 한옥마을에 사진 전시장을 내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를 따라다니다 서학동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서학동이란 동네를 그때 처음 알았다. 당시 서학동은 한옥마을 근처에 있으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마을로 퇴색해 가고 있었다. 마치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상가와 주택과 골목이 김지연 관장을 사로잡았다. 

“정겨운 골목이 가진 정서를 살리고 싶었어요. 그 골목 끝까지 가서 사진과 그림을 만나게 된다면 근사할 것 같았거든요.”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허름한 골목에 들어와 ‘허튼짓’을 시작했다. 1972년에 지은 한옥집을 6개월 동안 공사했다. 바닥도 뜯고 벽도 허물고 문도 새로 냈다. 그 집의 기운이 서린 멋스러운 서까래와 나무기둥, 장독대를 이고 있는 옥상만큼은 그대로 뒀다. 사진관은 주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서학동은 2010년부터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살더니 아기자기한 예술촌으로 변신했다. 이 모든 것이 과거를 망각하는 황폐한 추억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삭막한 골목은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금은 40~50개의 작은 갤러리와 공방이 이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서양화가인 이일순 작가는 이곳에 드나들다 반해 아예 운영을 맡고 눌러앉았다. 정지한 공간에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부여하는 것, 그의 운명이었다.
 
느리고 촌스러워도 오랫동안 깊숙이 
침투하는 예술 공간 됐으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진관은 한결같이 ‘반복되는 새로움’을 전파한다. 그래서 이 작지만 놀라운 공간은 늘, 언제나 도발적이고 맹렬하며, 전혀 따분하지 않다. 이름은 사진관이고 갤러리지만 아무나 드나들 수 있다. 아기자기한 화단에는 오후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티 테이블이 있고, 내부로 들어서면 볕자락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싶은 카페가 있다. 

전시장은 크게 두 공간이다. 주 전시가 이뤄지는 층고 높은 메인 전시장과 딱 두 평 남짓이라 해서 이름마저도 그러한 두평갤러리다. 두평갤러리에서는 주로 사진작가인 김지연 관장의 작은 사진전시가 이뤄진다. 원래 연탄 창고로 사용됐던 곳인 만큼 허리를 살짝 굽히고 들어가면 가까이서 마주하는 영산강, 포플러나무, 덤불 숲, 그 속에 피어난 야생화 등이 숨통을 틔게 한다. 메인 전시관에서는 유백영 사진작가의 ‘유백영의 길’ 전시가 한창이다. 전시는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기차역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사라진 오래된 기차역, 낡은 철로, 은퇴를 앞둔 역무원,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노부부, 여행하는 연인들이 담겨 있다. 
 
“디지털시대에 조금 늦게 가는 사진 공간으로 관람객에게 다정다감하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이일순 대표의 짧은 설명은 참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유람하는 기분으로 사진 한 점 한 점을 대하고 전시장을 빠져나오면 비밀의 정원 같은 뒤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곳을 가로질러 한쪽 구석에 난 계단을 오르면 너무도 푸르러 눈이 부신 아찔한 루프톱 공간이 펼쳐진다. 장독대 대신 옹기종기 모여 앉은 테이블과 의자는 실로 초속적인 휴식을 부른다. 작지만 필요한 모든 기능이 빼곡히 들어찬 서학동사진미술관에는 세미나 공간이나 교류전 숙박시설로도 활용되는 사무실 공간이 있다. 카페에서는 작품 사진과 도록, 서적 판매도 이뤄진다. 

‘사진미술’이라는 테두리로 전시작품을 한정 짓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다. “정원을 이용한 패브릭 아트전은 물론 마당을 활용한 설치 미술전까지 펼쳐져요. 가끔 막걸리에 지짐이를 부쳐 먹으며 이웃한 예술가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요. 결국 그게 서학동만의 교류방식이지만요.” 

누구는 인생을 두고 고난의 연속이라 하지만 이들은 인생을 즐기며 걸어간다.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도 듣고 인생에 대한 관조와 새로운 경험도 얻는다. ‘C′est la vie.’ 그것이 인생이고 곧 예술임을 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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