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다. 결코 용서할 수 없을 상처를 준 식구들을 만나야 하는 걱정과 분노에 대한 이야기,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는 착한 척하던 교활하고 사악한 시누이, 동서 등 모든 친척들에 대한 원한, 사랑했지만 그만큼 원망하게 된 부모에 대한 이야기, “공부 잘하고 있니?”, “언제 취직할 거니?”,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질문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 명절이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분노 덕에 정신건강의학과는 반짝 호황을 누린다.
만일 당신이 가족들이 모인 명절에 방에 숨거나, 어디 갈 것도 아니면서 운전석에 앉아 먼 하늘만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는 어떤 핑계를 대고 아예 가족모임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 명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당신 없는 일주일>을 강력 추천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이 썩어가는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구나!’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주인공 저드는 35살의 라디오 프로그램 PD다. 그는 아내의 생일날 깜짝 파티를 해주려고 한낮에 집에 갔다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다. 분노하고 절망한 저드는 직장도 때려치우고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본가에는 잔소리꾼 어머니, 늘 저드를 무시하던 형과 형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누나와 아이들, 얼간이 역할 담당 동생과 그의 부자 연상 애인이 하나둘씩 모인다. 안타깝지만 보편적이게도 형제들은 서로의 잘못과 아픈 점들을 콕 집어 상처를 주는 데 달인들이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쉽게 상처받는 겁쟁이들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언을 들려준다. 가족이 모여 일주일 동안 추모 기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역기능 가족’이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집에 갇혀 전쟁을 치르고 나름 화해하고 과거의 상처를 용서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어렸을 적 가족, 가장 의존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깊이 각인돼 오래간다. 어릴 적의 상처는 뇌의 회로를 왜곡된 방식으로 배선시키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과다하게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년기에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극복하기 매우 힘들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극복 가능하다.
족보상으론 가깝지만 결코 친밀하지는 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말을 불쑥 건넨다. 대부분은 말실수다. 서로 어디에 어떤 지뢰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특히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그 가족 내에서 약자이기에 더 취약하다.
말로 비롯되는 상처는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일 때, 먼저 인터넷을 뒤져서 각 연령대와 처지에 따라 명절 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의 순위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다. 친절한 표정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려 노력하고, 의뢰하지 않는 이상 제 의견을 먼저 말하지 않고, 의뢰해도 최소한 세 번은 숙고한 후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말실수를 하지 않는 ‘황금 법칙’이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어도 건설적이고 상대방을 위하는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정말 꼭 해야 하는 이야기라면 세련되고 재치 있게 해야 한다. 설교는 짧게.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원수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나의 경우 세련과 재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별로 현명하지도 않기에 내 의견보다는 친절한 태도로 경청하는 척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