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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별의 씨앗
운도 실력이라고?
오찬호 『민낯들-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2022년 10월호


프로야구 원년 MVP 박철순 선수의 별명은 ‘불사조’다. 팀을 위해 몸을 혹사해 여러 부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1996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기에 따라붙은 별명이었다. 박철순 선수는 이에 대해 최근 한 방송에서 “어쨌든 부상이 많았다는 말이니까, 프로선수로서 몸 관리를 못했다는 것 아니냐”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래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게 ‘부상도 실력’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세계와 어울린다고 여겨서일 거다. 본인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얼마나 기가 찰 일일까?

살면서 들었던 가장 차가운 말 중 하나가 ‘아픈 것도 실력’이라는 표현이다. 물론 꾀병도 있을 거고, 또 중요한 회의 전날에 컨디션 관리는 하지 않고 늦게까지 과음해서 배탈이 난 사람을 떠올린다면 그런 말이 등장한 배경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면역력이 좋을수록 잔병치레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니 평소에 체력을 강화하자는 의도라고 해도, 질병이 어디 사람 마음먹기만으로 온전히 통제되는 것이었던가?

누구는 더 자주 머리가 아프고, 누구는 더 자주 설사를 하고, 누구는 더 자주 습진이 도지는 게 바로 사람이다. 게다가 그 원인도 ‘신경성’이라는 모호한 원인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다양한 체질 차이가 실력, 능력 등의 단어 안에 그리 쉽게 포함될 성질은 아닐 거다.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평가해 분류하고 배제하는 데 익숙한 ‘능력주의 공화국’에선 그게 무슨 명언이랍시고 부유한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다 사람의 운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가호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더 건강해서 아프지 않다면, 그 건강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지닐 수 있다는 게 그저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는 거다. 무슨 소리냐,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라고 따질 사람도 있겠지만 ‘평소에 꾸준히’라는 상황이 성립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목표를 향한 개인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그 의지를 발현시키는 사회적 조건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 무시가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는 거다.

‘운 때문’이라는 말은 최근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저 사람은 금수저지만 ‘운이 없었던’ 나는 정말로 자수성가했다는 식의 서사가 그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짐을 자각하자는 사회적 움직임이다. 피 터지는 투혼을 보여준 누군가의 인생이, 피가 터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힘들다는 건 다 핑계’라고 빈정거리는 연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무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운 때문이야!’라고 말하자는 건 불평등을 성찰하고 사회구조적 변수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간과하지 말자는 거다. 그럴수록 사회의 불평등을 ‘개인의 탓’이라 여기는 이들은 줄어들고 난공불락의 능력주의가 조금이나마 희석된다.

그런데 이 ‘운’조차도 노력 담론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본 글은 이랬다. 운은 결국 실력이 있으면 따라붙는다, 실력이 8이면 여기에 운이 더해져 10이 되는 건데 이 운이 실력 4인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 답은 자신의 실력을 8까지 키우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력 4가 8이 되는 데는 ‘운’이 필요 없을까?

실력은 노력이 동반돼야 하고 그 노력은 여러 제반 조건을 필요로 한다. 경제력, 부모님의 상황,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가족관계와 자신의 위치, 지역 격차, 심신 건강 등 변수는 차고 넘친다. 이게 아우러져 무엇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지속된다. 그걸 ‘운’이라고 여길 때 사람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차별과 혐오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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