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원년 MVP 박철순 선수의 별명은 ‘불사조’다. 팀을 위해 몸을 혹사해 여러 부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1996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기에 따라붙은 별명이었다. 박철순 선수는 이에 대해 최근 한 방송에서 “어쨌든 부상이 많았다는 말이니까, 프로선수로서 몸 관리를 못했다는 것 아니냐”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래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게 ‘부상도 실력’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세계와 어울린다고 여겨서일 거다. 본인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얼마나 기가 찰 일일까?
살면서 들었던 가장 차가운 말 중 하나가 ‘아픈 것도 실력’이라는 표현이다. 물론 꾀병도 있을 거고, 또 중요한 회의 전날에 컨디션 관리는 하지 않고 늦게까지 과음해서 배탈이 난 사람을 떠올린다면 그런 말이 등장한 배경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면역력이 좋을수록 잔병치레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니 평소에 체력을 강화하자는 의도라고 해도, 질병이 어디 사람 마음먹기만으로 온전히 통제되는 것이었던가?
누구는 더 자주 머리가 아프고, 누구는 더 자주 설사를 하고, 누구는 더 자주 습진이 도지는 게 바로 사람이다. 게다가 그 원인도 ‘신경성’이라는 모호한 원인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다양한 체질 차이가 실력, 능력 등의 단어 안에 그리 쉽게 포함될 성질은 아닐 거다.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평가해 분류하고 배제하는 데 익숙한 ‘능력주의 공화국’에선 그게 무슨 명언이랍시고 부유한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다 사람의 운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가호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더 건강해서 아프지 않다면, 그 건강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지닐 수 있다는 게 그저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는 거다. 무슨 소리냐,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라고 따질 사람도 있겠지만 ‘평소에 꾸준히’라는 상황이 성립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목표를 향한 개인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그 의지를 발현시키는 사회적 조건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 무시가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는 거다.
‘운 때문’이라는 말은 최근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저 사람은 금수저지만 ‘운이 없었던’ 나는 정말로 자수성가했다는 식의 서사가 그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짐을 자각하자는 사회적 움직임이다. 피 터지는 투혼을 보여준 누군가의 인생이, 피가 터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힘들다는 건 다 핑계’라고 빈정거리는 연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무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운 때문이야!’라고 말하자는 건 불평등을 성찰하고 사회구조적 변수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간과하지 말자는 거다. 그럴수록 사회의 불평등을 ‘개인의 탓’이라 여기는 이들은 줄어들고 난공불락의 능력주의가 조금이나마 희석된다.
그런데 이 ‘운’조차도 노력 담론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본 글은 이랬다. 운은 결국 실력이 있으면 따라붙는다, 실력이 8이면 여기에 운이 더해져 10이 되는 건데 이 운이 실력 4인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 답은 자신의 실력을 8까지 키우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력 4가 8이 되는 데는 ‘운’이 필요 없을까?
실력은 노력이 동반돼야 하고 그 노력은 여러 제반 조건을 필요로 한다. 경제력, 부모님의 상황,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가족관계와 자신의 위치, 지역 격차, 심신 건강 등 변수는 차고 넘친다. 이게 아우러져 무엇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지속된다. 그걸 ‘운’이라고 여길 때 사람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차별과 혐오도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