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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이 고플때, 힐링푸드
검소함에 대하여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2022년 10월호


이번 글의 시작은 간단한 퀴즈.
나는 평소 음식을 먹을 때 _______ 먹는다.
① 맛있는 것을 가장 먼저
② 맛있는 것을 가장 나중에


①번이 정답. ②번은 오답으로, 배부르고 살만 찐다.

웃자고 한 얘기에 정색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양한 조건이 있으니 100% 단정할 수는 없다. 한 90% 상황에서만 ②가 오답이라는 연막을 쳐야겠다.

첫 번째 이유는 맛이다. 1인분의 음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가장 맛있는, 가장 좋아하는 맛을 맨 처음 먹어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어떤 음식이든 가장 맛있는 것은 때가 있다. 갓 나왔을 때 첫 한 입이다. 온도와 습도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접시 위의 음식은 시간이 흐를 때마다 조금씩 맛없어진다. 회의 맛있게 차가운 온도는 실온에 점점 미지근해진다. 껍질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잘 구워 놓은 옥돔구이의 가장 맛있는 뱃살과 껍질을 맨 마지막에 먹겠다고 아껴놓았다간 온도는 식고 질감은 축축하고 맛은 느끼해진 채 먹게 된다. 아끼면 X된다, 진심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역치다. 맛에는 역치라는 것이 있다. 음식 스스로도 온도와 습도를 잃으며 맛없어지지만, 먹는 사람의 식욕과 입맛도 먹을 때마다 떨어진다. 가장 배고플 때 가장 맛있는 쪽을 가장 만족스럽게 맛을 만끽하며 먹는 것이 남는 장사다. 게다가 맛있는 것을 마지막에 먹자고 하면 대충 배가 터지기 직전이다.
그리 어려운 얘기도 아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먼저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이 간단한 것을 나는 요즘 애써서 실행하는 중이다. 그렇다. 내가 다름 아닌 ‘②찍’이다. 아껴 먹다 배부르고 살이나 찐 사람이다. 퀴즈 풀이의 세 번째 이유인 삶을 살아가는 태도 얘기와도 연관된다. 좋게 말해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들이 ②의 습관을 갖고 산다. 핵심을 있는 대로 말하자면 가난한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아낀다. 그런 사람들은 인색해서 심지어 자신이 먹는 것인데도 아낀다. 자신에게 인색하고 혹독하다. 남에게도 인색하고 혹독해질 수밖에 없다.

배를 곯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가난해 본 적은 없다. 물질적인 가난의 문제이기보다는 마음과 태도의 가난 문제다. 토스트를 구울 때마다 나는 속으로 세 번 외운다. 내가 먹을 버터를 아끼지 말자. 내가 먹는 버터는 아깝지 않다. 내가 먹을 버터를 충분히 쓰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버터를 은근슬쩍 덜 베어내게 된다. 한 큰술을 써야 할 때 한 작은술 정도를 덜 쓰는 정도다. 그 몇백 원어치에 인색해지는 것이다. 이유도 변변치 못하다. ‘이번에 아껴두면 다음에 넉넉하겠지’, ‘마지막 한 번 더 쓸 양이 오늘 아낀 걸로 나올지도 몰라’라는 비이성적인 이유를 만들어가며 의미 없이 장래를 대비한다. 비단 음식뿐 아니라 옷이나 집을 정하는 데서도 항상 충분히 지르지 못하고 애매한 10% 정도를 아껴두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 누구도 하라고 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전혀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고진감래를 왜 굳이 하고 있을까? 그 얘길 다 파헤치자면 개인사의 심원한 문제가 돼버리지만 여기서 하려는 얘기는 무엇인가를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것이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능력이 되는데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미래의 나에게 가장 맛있는 한 입을 양보하는 것은 적어도 삶의 아름다움의 반대에 있는 일이다. 미래의 나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온 과거의 나를 더 달갑게 여길 것이다. 아껴봐야 그게 실제로 가장 맛있는 한 입인 그대로 기다려주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니까 ②를 골랐다면 이제부터라도 당장 그 바삭바삭하고 촉촉한 가운데 토막부터 먹길 바란다. 옥돔도 식으면 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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