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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이 아닌 온전함을 꿈꾸며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10월호


무뎌진 일상에 살랑바람처럼 이는 만남이 있다. 장승배기역에서 나와 살짝 경사진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다 보면 알록달록 공방 간판들이 걸린 까만 건물이 나온다. 각종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인 ‘더블유바이더블유(WbyW)’ 협동조합 속에서 ‘하마공방’이라는 이름은 유난히 눈에 띈다. 설마 하마를 찍어내는 공방은 아닐 테고, 대체 뭘 만드는 곳일까. 물음표를 안고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하마공방’의 어마어마하다 못해 ‘하마하마’한 정체가 드러난다.

자아실현과 개성충족을 위해 가진 제2의 직업, 슈메이커

시각으로 감지하기 전에 그윽한 가죽냄새가 코끝으로 먼저 전해지는 공방에는 하나영 대표의 손길이 닿은 갖가지 소품들과 가죽 공예를 위한 재료들이 투박하게 펼쳐져 있다. 뒤로는 ‘아는 언니’가 그려줬다는 애니멀패턴의 핑크 컨버스화 그림과 함께 ‘하마공방’이라는 네 글자가 손글씨로 쓰인 포스터가 걸려 있다. 묘하게 투박함과 친근함이 공존한다. ‘하마’란 이름은 그의 이름인 ‘하나영’과 세례명인 ‘마리나’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하나영도 마리나도 제 이름이니 하마는 곧 또 다른 저의 이름입니다.”

그는 동작구 여성 핸드메이더들의 모임인 ‘더블유바이더블유’ 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회계 담당이다. 자의든 타의든 많은 여성의 삶은 경력 단절로 안타까운 사연을 갖는다. 그 또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인 하나영 대표는 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죽 구두를 만드는 기술을 갖게 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저는 평범하지 않은 발을 갖고 있어요. 천편일률적인 기성화를 신으면 늘 불편했죠. 그게 착화감이 좋은 구두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동기가 됐어요. 물론 구두회사에 취직해 수많은 직원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당당한 ‘일(1)’로 스스로 발을 땅에 딛고 싶었어요.”

하마공방에서 주로 만드는 건 가죽 운동화와 슬리퍼. 하 대표 스스로 운동화가 좋았고 가죽이 가장 편안할 것 같아 정한 아이템이다. 한쪽 신발장에는 슬리퍼 샘플들이 색깔별로 진열돼 있다. 공방 곳곳에는 수많은 가죽 샘플과 슈즈 패턴이 잭슨 폴락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릭그린, 몽키옐로, 썬레드, 딥네이비 등 따스함과 개성을 담은 컬러 가죽 속에서, 하 대표는 구두칼, 망치, 송곳, 펀치 같은 도구들에 둘러싸여 있다.

굳은살이 박힌 단단한 손이 말해 주듯 이곳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과정은 단 하나도 없다. 전부 수작업이다. 슈메이커로서 일류가 되기보다 작은 손을 가진 여자도 얼마든지 망치를 들고 근사한 수제화를 제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기도 하다. “거창한 디자인 철학은 없어요. 신는 사람의 발이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편안한 신발이 예쁘면 더 좋고요.”

 

느리고, 더디고, 투박하고, 비싸도 그 과정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 있어

겉은 소가죽, 안쪽은 스웨이드 재질로 마무리한다. 그래야 발등 부분도 부드럽게 착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신발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는 없다. 그래서 금방 익숙해진다. 밑창에는 드릴로 구멍을 뚫어 그 구멍 사이를 통해 바늘로 박음질을 꼼꼼하게 해준다. 일반 실이 아닌 튼튼한 린넨 실을 사용한다. 최고의 재료를 고집하는 이유는 내구성에 있다. 끝내주는 착화감을 이왕이면 더 오래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한 번도 안 신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신은 사람은 없다. 단골 중에는 평생 이렇게 편한 신발은 처음이라는 70대 할머니도 있다.

제작과 판매만 하는 건 아니다. 슬리퍼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도 열고 가끔은 지역주민, 청년들과 함께 가죽 슬리퍼 만들기 체험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핸드메이드는 여전히 불편하다. 편하고 싸고 빠르게 완성되는 제품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다소 바보 같은 아이템일 수도 있다. 개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진짜 남 눈치를 보지 않고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거리만 둘러봐도 온통 검은색, 회색 일색이다. 그는 지극히 사소한 1인분의 취향을 존중한다. 하마공방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어떤 책에서의 말마따나 ‘행복한 개인주의가 많은 사회’가 제가 원하는 사회예요. 내 취향을 아는 ‘나’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핸드메이드 제품은 느리고, 더디고, 투박하고, 비싸요. 그런데도 그것이 좋고 그 더딘 과정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존재해요. 수요가 있다는 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겠죠. 전 혼자가 아니에요. 소수의,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조합원들이 함께 있어요.”

그의 꿈은 여자 하나영으로, 엄마 하나영으로, 슈메이커 하나영으로 많은 부캐들과 투닥거리면서 온전한 ‘하나영’으로 사는 것이다. 의지를 꺾는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뛰어넘어 여전히 힘차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 말이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은 이제 재정의돼야 한다. ‘여자는 강하다. 그러나 여자들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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