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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영화상담실
사랑과 존중의 힘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그룹 동물원 리더 2022년 10월호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가을이 깊어가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자부심과 보람보다는 후회와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메마른 내 마음은 눈물도 흘려주지 않는다. 그럴 때 영화 <파이란>을 봐줘야 한다. 펑펑 울 수 있도록.

주인공 강재는 삼류 건달이다. 건달을 하기엔 용기가 없고 마음이 약하다. 조직의 보스는 강재의 동기이고, 후배들은 강재를 무시한다. 배 한 척 사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꿈인 강재는 보스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가기로 한다. 자수를 하려는데 경찰은 아내가 죽었으니 시신을 가져가란다. 돈 몇 푼 벌려고 위장결혼을 해준 후 완전히 잊고 살던 중국 여인, 파이란이다.

유골을 찾으러 동해의 어느 마을을 찾은 강재는 파이란이 자신에게 남기고 간 편지를 보게 된다. “내가 죽으면 만나러 와주실래요?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겠습니까? 당신은 가장 친절한 사람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재 씨, 안녕.”

살아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다 죽어간 여자. 자신이 누군가에게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고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남자. 강재가 부둣가에서 파이란이 남긴 편지를 읽고 처절하게 오열할 때 나도 따라 펑펑 울었다. 어른이 되고 그렇게 운 적은 처음이었다. 울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강재도 그러했으리라.

사랑은 퍽퍽한 현실을 확 바꿔주는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세상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돼준다. 그래서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내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러하듯. 내가 그 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믿을 때, 나는 내 자신을 존중하고 그 사람을 위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최소한 덜 부끄럽고 추한 사람이 되려고. 강재가 그러했듯이.

인간을 발전시키는 외부적인 힘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신체적 힘과 권위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힘과 권위로 아이들을 통제하듯. 하지만 신체적 힘과 권위로의 통제는 불편과 불쾌감을 동반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다음은 혜택이다. 좋은 대가를 얻기 위해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좋은 것에 너무 쉽게 익숙해지고 늘 더 좋은 것을 원하게 된다. 혜택은 인간의 욕망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기에 한계가 있다.

마지막, 가장 큰 힘은 사랑과 존중이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딸이 되기 위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인정과 존중을 받고자 노력하고 인내하며 발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대상이 되기 위해, 아이들에게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기 위해 좀 더 발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랑과 존중은 외부에서 내면으로 들어와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은 내적 동기가 된다.

내 자신을 돌아보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사랑과 존중을 주는 일. 그래서 그들도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 슬픔과 후회를 눈물로 씻어냈으니, 이제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다짐한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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