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에게 ‘울산고래축제’에 관해 묻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나에게 묻는 이유는 박태하 작가와 함께 쓴 『전국축제자랑』 때문이며, 많고 많은 축제 중에서 ‘울산고래축제’에 관해 묻는 이유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굉장한 인기를 누리면서 주인공인 우영우가 끔찍이도 사랑해 화면 곳곳에 CG로 등장하는 다양한 고래들도 덩달아 큰 관심을 받고 있어서다.
실제로 울산고래축제가 열리는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는 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유례없이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1만6,094명이 장생포를 방문했는데 올여름 휴가철에 방문한 일평균 관광객이 1만142명을 기록했으니 1년간 올 관광객이 하루에 다 오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장생포도 드라마를 이용한 이벤트로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같은 이름을 가진 관광객에게 장생포 내 전체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입장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가히 우영우가 쏘아올린 고래 열풍이자 우영우가 일으킨 장생포이고, 이러다가 요상한 조형물이나 동상 만들기에 광적인 열정을 갖고 있는 K지자체 특성이 발휘돼 조만간 장생포에 우영우 동상이 세워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다. ‘열풍’까지는 아니지만 은은한 ‘미풍’이 불어서 예전에 출간됐던 고래에 관한 잊혀진 책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덕분에 안 읽었으면 후회했을 보석 같은 책들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는데, 그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책은 생태철학을 연구하고 다양한 매체에 관련 글을 기고해 온 호주 출신 작가 리베카 긱스가 쓴 『고래가 가는 곳』이다.
수천 년 전 암각화에 고래를 새겼던 고대인들과 고래가 문화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부터 최신 과학계가 밝혀낸 업데이트된 이야기들까지 총망라한, 정말 이 시대 고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은 ‘끝판왕’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영우가 누군가를 붙잡고 고래 이야기를 신나서 한참 늘어놓듯 “‘녹’이라는 이름의 흰고래는 다이버들과 지낸 지 7년쯤 됐을 때부터 사람 성대모사를 해서 다이버들이 동료 다이버가 한 말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해”, “고래들의 배설은 영양 펌프 구실을 하며 해저 수많은 유기물질의 순환을 돕는데,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플랑크톤들을 전 지구적 규모로 번성하게 만들어 고래 한 마리가 천 그루 이상의 나무보다 큰 역할을 하며 대기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인간 행위의 간접적 여파에까지 우리 상상이 미치지 못할 때, 그리고 우리 관점이 편협할 때,
우리는 인간이 아직 만나지 못했던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동물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린다. -p.416
무엇보다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생태적 태도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 우영우 고래 열풍의 이면은 무척 씁쓸하다. 현재 장생포에서 가장 인기 높은 두 곳은 한국 최초의 돌고래수족관인 ‘고래생태체험관’과 배를 타고 나가 돌고래를 직접 볼 수 있는 ‘고래바다여행선’인데, 극 중에서 우영우는 이 두 가지 모두 고래 학대라며 반대하기 때문이다. 우영우로 인해 고래를 사랑하게 됐지만, 정작 우영우도 반대하는 학대의 방식으로 고래를 사랑하는 것. 이런 상상력이 부족한 사랑, 인간중심적 사랑의 유독함에 대한 긱스의 통찰을 아프게 새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