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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녀오겠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을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순천
임운석 여행작가 2022년 10월호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존 상태가 좋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으며 CNN 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 문화재청 선정 가족여행지 32선에도 올랐다. 한양을 모델 삼아 만든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낙안’은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300여 채의 초가가 원형을 유지한 채 보존돼 있어 사극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대표작으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있으며, 드라마는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다모> 등을 촬영했다. 옹기종기 자리한 초가집과 돌담이 영화 세트라고 하기엔 정교하고, 민속촌이라고 하기엔 온기가 느껴진다. 낙안읍성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주민이 사는 민속마을로, 현재 행정 구역상 3개 마을에 주민 300여 명이 살고 있다.

1.4km의 석성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임경업 장군이 군수로 재직하던 인조 6년(1628년) 지금의 석성으로 고쳐 지었다. 마을 안에는 ‘임경업장군비각’이 있다. 중국에서 관우가 신격화됐다면 여기서는 임경업 장군이 수호신처럼 신봉된다. 이런 까닭에 임경업 장군이 낙안읍성을 하룻밤 만에 쌓았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비각 뒷건물은 객사로 조선시대에는 출장 온 관료들이 이용했고, 구한말에는 학교로 사용돼 오다가 1982년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이웃한 동헌과 내아 건물은 모두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백성들이 사는 초가와 구분돼 양반과 지배계급의 상징처럼 보인다. 객사와 동헌 뒤편에는 나이 많은 노거수들이 옛이야기를 전해 주듯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서문 방향 성곽을 따라가면 된다. 성곽 끝자락에 조성된 대나무밭을 지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산들이 성을 보호하듯 품고 있다. 그 속에 자리한 초가마을은 고즈넉하기 짝이 없다. 봉긋한 초가는 집이라기보다 왕릉 같고 언덕 같다. 고샅길이 경계를 만들고 군불을 때는 집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난다. 어디선가 동구 밖까지 목을 길게 뺀 할머니가 손짓하며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 같다.

 

세계 5대 연안습지가 품은 갈대숲

신경림 시인의 표현처럼 현대인들은 갈대처럼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지 않을까? 흔들리며 울고 있는 갈대가 내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된다면…. 이런 바람을 안고 순천만습지를 찾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순천만습지는 가을에 찾아야 제격이다. 황금색으로 물든 갈대밭과 창공을 나는 철새의 군무, 그리고 순천만을 불태우듯 붉게 타오르는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서다.

2015년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받은 순천만습지의 하이라이트는 갈대밭 산책로와 용산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이다. 두 지점을 왕복할 경우 약 5km 거리다. 구간을 걷는 동안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갈대꽃을 볼 수 있고, 용산에 이르면 산길을 걷는 묘미까지 더해진다.

매표소를 지나면 천문대와 순천만자연생태관이 잇댄다. 잔디광장, 생태연못, 자연의 소리 체험관을 거쳐 무진교에 이른다. 이후부터 국내 최대 규모의 광활한 갈대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넓은 갈대밭 사이로 걷기 편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낙조를 관람할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는 1.5km 안팎이다.

순천만 갈대는 유난히 키가 크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다. 조용히 귀 기울이면 ‘사각사각’ 갈대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자연의 소리에 발맞춰 유유자적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편에 치유라는 먹물이 점점 번지고 있을 것이다.

갈대는 빛이 역광일 때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오전보다 오후가 산책하기에 좋다. 일몰 시각을 고려한다면 넉넉하게 일몰 2시간 전에 입장을 마치고 용산전망대로 향해야 한다. 출렁다리를 지나 용산전망대로 가는 길은 빠른 길과 느린 길로 나뉜다. 약간의 난이도 차이일 뿐 모두 흙과 솔 내음을 맡으며 걸을 수 있다. 보조전망대 두 곳과 출렁다리 두 곳을 지나 용산전망대에 이른다. 때마침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면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곳,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정원은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영구 보존하고 자연친화 도시 순천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정원이다. 2013년 역사적인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됐고,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순천만정원이 우리나라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됐다. 내년에는 10년 만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다시 개최될 예정이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원의 수목은 한결 울창해지고 성숙해졌다. 지속적인 리뉴얼도 이뤄졌다. 이제 순천만국가정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곳으로 정원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순천만국가정원 안으로 들어가면 압도적인 규모에 놀란다. 워낙 부지가 넓어 가장 기본적인 코스만 돌아도 2시간이 소요된다. 111만m²(약 34만 평)에 달하는 정원은 크게 동편과 서편으로 나뉜다. 서쪽은 순천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한국적이라면, 동쪽은 세계의 정원을 모아놓은 테마정원이다. 서쪽 정원에서 챙겨 봐야 할 곳은 ‘빛의 서문’을 지나면 나오는 단풍나무길로, 가을이면 절정을 맞는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각종 나무가 숲을 이룬 나무도감원이 나타난다. 잘 가꿔놓은 나무와 정원이 어우러져 저절로 힐링이 된다. 이곳에서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한국 전통정원이 나온다. 조금 걸어가면 전망대가 있어 정원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언덕 앞 작은 호수는 순천만습지를 형상화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려면 ‘꿈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버려진 컨테이너를 활용해 만든 꿈의 다리는 ‘물질의 순환과 재활용’이라는 콘셉트로 환경보호 메시지를 담았다. 동쪽 정원으로 건너가면 이국적인 테마의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중국 무협 사극에 나올 법한 중국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뒤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모티브로 한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동쪽 중앙에는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가장 핫한 호수정원이 있다. 호수 속 봉화언덕을 오르는 산책 길은 달팽이처럼 설계돼 독특함을 자랑한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만나지 않는 기하학적 구조의 길이다.

그 외에도 멕시코 정원, 네덜란드 정원 등 13개의 세계 전통정원과 꿈틀정원, 하늘정원 등 14개의 테마정원, 명상정원, 두루미정원 등 28개의 참여정원이 곳곳에 자리 잡고 방문객을 맞이한다. 정원마다 고유의 테마와 개성이 가득해 볼거리가 넘쳐난다. 보행이 불편한 교통약자라면 전기관람차를 타고 돌아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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