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시평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산업 육성법」이 남긴 것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국제지역연구센터장 2022년 10월호


전 세계가 경기침체의 공포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차별적 적용에 직접 노출되는 위기를 맞았다. 지난 8월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에는 ‘북미 지역 최종 조립 요건’을 갖춘 전기차만이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전량 한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규정이 WTO와 한미 FTA에 명시된 차별금지 조항에 저촉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을 목표로 「반도체산업 육성법(CHIPS+)」도 제정했다. 미국 상무부는 국가안보 보호를 위해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기업에 10년간 중국 첨단시설 투자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만일 투자가 이뤄질 경우 지원금을 회수하겠다는 내용을 공표했다. 이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 투자가 우선이며, 향후에도 최첨단산업인 반도체와 전기차 분야를 미국이 지배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메이드 인 USA’의 본격화에 시동을 건 것이다.

사실 한국은 미중 갈등 와중에 중국의 도전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글로벌 ‘가치’와 ‘규칙’을 수호하자며 동맹국들을 규합하는 미국에 ‘글로벌 가치외교’ 동참을 선언하며 보조를 맞췄다. 특히 한국 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Chip 4)’ 참여를 수용한 상황이고, 현대차나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미국에 현지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중이어서 충격이 더 크다. 바이든 행정부가 겉으로는 서방 중심의 ‘가치 동맹’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의 재판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원자재의 70%를 중국 광물에 의존하며 거의 전량을 중국 현지에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황이어서 ‘핵심물자의 미국 내 생산’이라는 법제적 제한은 불이익 요소가 클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 투자를 발표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 역시 중국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만큼 중국 투자를 제한한 규정은 상당한 부담이다.

물론 미국도 한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없으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배터리의 경우도 미국 에너지부는 2025년 한국 업체가 미국 배터리시장의 7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IRA」나 「CHIP+」에 정치적 관망이나 정치적 수사가 개입돼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기차와 반도체 산업의 패권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노골적이라는 데 있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은 이미 자국 원천기술과 일본의 소재·부품·장비를 결합하는 협의를 시작했다. 사실상 한국의 반도체 지위를 빼앗으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전기차 배터리도 한국 기술에 대한 견제가 본질임을 나타내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단 「IRA」에 대한 우려를 미국에 전달하면서, WTO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한미 양국이 전기차 세액공제와 관련해 별도의 협의채널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이에 더해 한국 정부는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의 국가 차원 공세에 대한 범정부적인 종합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의 이 두 법안은 국제 규범 수호로 포장됐지만, 결국 미국에서 자국 중심 논리가 우선시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기업의 대응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한국 정부도 미중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논리를 전개하면 중국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포괄적 글로벌 전략 동맹’을 상징하는 최대 협력국 한국의 입장이 복잡해질 수 있음을 미국에 분명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