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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씨앗
밑도 끝도 없는 ‘사회성 부족’이라는 분석
오찬호 『민낯들-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2022년 11월호


첫째 아이는 말이 늦었다. 나는 ‘○개월 언어발달’, 이런 검색어를 매달 입력하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았다. 만 2세, 만 3세가 넘어서는 언어발달 관련 기관들을 찾아다녀야 하니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들었다. 그 시절 말 잘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건 당연했다. 하루는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있던 첫째 또래가 부모와 유창한 대화를 주고받기에 슬쩍 우리 상황을 말하면서 부럽다는 식의 말을 건넸다. 무엇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때가 되면 다 하는 거죠’라는 식의 위로나 받고자 하는 심정에서였다. 하지만 빈정거림이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는 동화책을 많이 읽어줬으니까요!”

동화책은 우리 부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었을 거다. 그것도 구연동화처럼 큰 소리로 또렷하게 말이다. 제스처를 곁들이는 건 당연했다. 노력은 노력의 결실이 없을수록 더 배가됐다. 부모 ‘탓’이라는 분석이 넘쳐나는 세상을 향해 나는 예외라는 증거물을 남기려는 애잔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선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늘 ‘자기처럼’ 해보라는 말들만 넘쳐났다. 어릴 때 사회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 거라는 선을 넘는 훈계도 거침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성’이라는 건 이런 거였다. 어릴 때 목욕을 같이 했고, 어린이집을 일찍 보냈고, 주말마다 외출했다 등등. 설마 그런 걸 하지 않았겠냐고 따져본들, 사과는커녕 “그런데 왜 말을 못 해?” 수준의 답답한 반응만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사회성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쉽사리 평가하는 용도로 오용되곤 한다. 사회성은, 이런저런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는 진심 어린 조언으로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관계도 안 맺었으니 저 모양이라는 낙인의 근거로 활용된다.

따져보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야말로 사회성이 빵점임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사회성 좋다’는 표현이 그렇게 정교하게 사용되진 않는다. 그저 아는 사람 많은 게 사회성이 좋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공개장소에서 큰 목소리를 내면 사회생활 잘한다는 칭찬이 따라붙곤 했다. 이런 그릇된 정의와 비례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해석도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사회성을 키우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는 해법도 곳곳을 돌아다닌다.

최근에 육아 상담 형태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이가 부모와는 잘 놀지 않는데 혼자서는 기차 하나만 쥐여주면 몇 시간이나 집중한다. 혹시 사회성이 부족해서 이런 거 아닌지 걱정된다.’는 질문에 전문가는 연령에 맞는 놀이가 있으니 걱정 말고 괜한 부모 욕심으로 아이 힘들게 하지 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의 답을 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아이의 사회성 발달의 토대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볍게 다루며 글은 마무리됐다. 누가 보더라도 글의 핵심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사회성 기준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 그냥 잘 놀아주라는 거였다. 하지만 기사의 제목은 ‘부모와 함께 노래하거나 까꿍만 해도 사회성은 기를 수 있다’였다.

그런 내용이 있기는 했다. 머리를 빗겨주는 시간에 거울을 보며 노래를 부르거나, 로션을 바를 때 서로 코에 묻혀 보고 간지럼을 태워보거나 등등의 방법이 제시는 됐다. 어디까지나 부모가 해야 될 일상적 자세에 관한 팁이었지, 사회성 교육은 별거 없다는 취지는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까꿍만 해도’라는 단정적인 제목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단정적인 생각의 근거가 될 거다. 이를테면 “사회성? 그거 까꿍만 해도 되는 건데, 그게 부족하다고? 부모는 도대체 뭘 한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확신은 어떤 아이가 말이 늦은 건 부모가 동화책도 안 읽어줘서 그런 거라는 상상력으로 이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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