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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잘러는 이렇게 쓴다
일잘러가 쓴 글에는 ‘애인’이 없다
송숙희 글쓰기 코치 2022년 11월호


글을 쓸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애인 죽이기(killing darling)’다. 여기서 ‘애인’은 자랑하듯 심어놓은 내용이나 표현을 말한다. 재치 있는 말장난이나 매력적인 배경 설명, 근사해 보이는 어록처럼 그 자체로는 멋지지만 글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내용이나 표현을 뜻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애인 죽이기’. 아무리 근사한 자료라도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라도 아이디어에 맞지 않는 것은 잘라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쓰는 동안 애인처럼 동료처럼 곁을 지킨 한 줄 한 줄을 가차 없이 쳐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잘 쓰고 싶다면 ‘애인’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오류는 줄이고 신뢰는 높일 수 있다. 아래의 내용을 읽어보자.
『하워드의 선물』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을 담은 책으로 40년 넘게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한 미국 경영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인 하워드 스티븐슨이 썼다. 나는 이 책을 참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갈팡대는 독자들에게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12가지 지혜’를 전해 준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경주마는 달려야 할 목표가 정해지면 그 즉시 달리고 보지만 야생마는 (…)

이 내용에서 앞 단락은 “나 이런 책 읽었소” 하는 자랑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런 자랑에 관심 없다. 앞부분을 ‘킬’하면 이렇게 간략해진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라 불리는 하워드 스티븐슨이 쓴 책에서 경주마와 야생마의 차이를 읽은 적이 있다. 경주마는 달려야 할 목표가 정해지면 그 즉시 달리고 보지만 야생마는 (…).

읽기를 방해하는 ‘필러 워즈(filler words)’도 우선삭제 대상이다. 쓸데없이 여백을 채운다고 해 ‘필러’라 불리는 구절이나 단어들은 의미전달에 기여하지 않아 없어도 그만인, 한마디로 잡동사니다. 추임새, 감탄사와 같은 것도 해당된다.

‘애인’이나 ‘필러’는 미련 없이 삭제하라. 그러면 더욱 간결하고 명료하게 문장을 쓸 수 있다. 독자에게 하려는 말이 무엇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버릴 게 분명해진다. 분량을 사수하라. 그러면 핵심만 남길 수 있다. 부사와 형용사는 수치로 대신하라. 그러면 메시지가 더욱 명료해진다.

몇 가지 예시를 꼽아봤다. 필요하지 않은 단어, 필러를 제거했을 때 얼마나 간결해지는지 살펴보자.
새로운 제품을 쇼핑몰에 업로드하려면 소비자 반응 조사를 선행해야 합니다. → 새로운 제품을 팔려면 소비자 반응 조사부터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필러는 속임수에 강하다. 아래 문장 어디에 필러가 있을까? 고쳐보자.
그는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자친구를 사랑합니다.

필러는 친절의 탈을 쓴 서툰 글쓰기의 상징이다. ‘이미 다 알겠지만’, ‘자주 말씀드리지만’ 같은 표현도 필러다. 아래 문장은 혹시나 독자가 모를까 봐 ‘앞에서 강조했듯이’라고 친절을 베푸는 모습이다. 과잉친절이다. 과감히 버리자.
앞에서 강조했듯이, 글쓰기는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 → 글쓰기는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

괄호나 콜론, 세미콜론 같은 문장부호도 순간 인식을 방해한다. 삭제하거나 문장으로 풀어쓴다. 아래 문장에서도 괄호가 들어가 복잡한 느낌을 준다. 풀어쓰면 간략하다.
박사과정(하버드대)을 등록한 후 학비를 대느라 절절맸다(학비가 너무 비쌌다).→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등록한 후 비싼 학비를 대느라 절절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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