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카사블랑카라는 도시에서 시작한다. 아프리카의 한 귀퉁이 모로코에 있는 카사블랑카는 유럽인들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통행증을 소지한 독일군 2명이 살해되고, 그 통행증이 술집을 운영하는 미국인 릭(험프리 보가트)의 손에 들어온다. 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카사블랑카로 온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가 라즐로와 그의 아내 일사(잉그리드 버그만)가 그 통행증을 얻기 위해 릭을 찾아오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일사는 릭의 옛 연인이다. 이유도 모르고 헤어졌던 두 연인이 오랜 시간 후에 그 많고 많은 술집 중에서도 아프리카의 작은 술집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정사각형 스크린의 흑백영화. 짧은 촬영시간, 빠듯한 제작비, 종이로 만든 엉성한 세트들, 마지막까지 완성되지 않은 대본, 확실한 정치적 의도…. 사실 <카사블랑카>는 새로운 것이 없는 진부함의 집대성 같은 영화다. 판에 박힌 멜로드라마적 설정에 난무하는 우연성, 허술하고 빈약한 이야기 전개 장치들. 사랑과 이별, 다른 사람의 연인이 된 옛사랑과의 예상치 못한 재회,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의 긴장과 공포,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을 품은 이 세상에서 가장 뻔한 이야기.
이 영화를 찍던 사람들 중에 이 영화가 향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커티즈 감독과 제작진은 그들의 한계와 약점을 만회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냈고, 끝없는 수정을 거친 대본은 마치 셰익스피어가 쓴 것처럼 수많은 명대사를 품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로맨틱 스릴러가 됐다. 그리고 우수에 찬 차도남 험프리 보가트와 복잡하고 고고한 눈빛의 잉그리드 버그만의 연기는 이 영화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영화로 만들어냈다.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특별함이란 전혀 없는 출신성분, 거기서 거기인 내게 주어진 역할과 목표에 큰 의문을 갖지 않고 따라온 삶,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인내해서 이 세상의 작은 영역을 내 것이라 할 수 있게 됐고,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며 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 있는 존재가 돼간다고 믿는 나 자신. 한 번 사는 것 이왕이면 멋지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은데, <카사블랑카>처럼 시간이 지나도 의미와 가치가 꾸준히 발견되는 클래식한 작품으로 남고 싶은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카사블랑카>를 다시 본다. 1980년대에 아버지가 사 온 비디오테이프를 열 번 이상 보며 대사도 다 외웠던 그 영화를 다시 본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클리셰’를 ‘고전’으로 만든 것일까? 최초는 아니었지만 이미 있는 좋고 멋진 것들을 잘 활용했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보통의 것들을 갈고닦아서 조금 더 세련되고 우아한 것들로 만들었으며, 인간의 공통적인 고통과 삶의 의미를 드러내려 노력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공항의 이별 장면이 그 노력을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은 촬영 마지막까지 정해지지 않았었다고 한다. 나를 위한 결정이냐,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냐. 결국 주인공 릭은 사랑하는 여인을 남편과 미국으로 보내고 혼자 남는다. “이렇게 지켜보고 있잖아(Here’s looking at you, kid)”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이라는, 창작에 가까운 번역으로 사랑받은 대사다.
결국 나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타심과 배려와 헌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욕망의 절제와 인내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런 것 같다. 내 삶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일 것이고, 그들에게 명작은 아니라도 좋은 삶으로 기억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