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월드컵 기간 전 세계의 이목이 카타르에 쏠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국팀이 출전한 국가든 그렇지 못한 국가든 한 달 넘게 축구 열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도 자국 대표팀을 TV에서 볼 수 없었던 14억 인구의 중국은 어땠을까?
중국의 대표적 SNS 채널인 위챗 모멘트나 틱톡에는 개인의 실시간 월드컵 시청 현황을 알리거나 우승팀을 점쳐보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적지 않은 치우미(球迷, 중국 축구팬)들은 카타르로 날아가 실시간으로 경기를 생중계하는 등 현지 축구 열풍을 생생하게 전하며 자국팀 부재로 인해 중국인들이 느끼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코로나와의 장기전에 지친 마음을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며 달랬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지난 12월 3일 있었던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의 경기를 중국 CCTV 방송국 중계를 통해 시청했다. 일본 경기에 이어 우리나라 경기에 보이는 해설자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우리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16강에 진출하자 이에 대한 설왕설래 역시 각종 SNS에 넘쳐났다. 경기가 있던 다음 날 아침 중국 지인으로부터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카타르 월드컵에 중국은 선수 빼고 다 보냈다”
중국이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쏟아부은 기업 후원금은 13억9,500만 달러라고 한다. 실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중국 기업의 이름을 중계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 주 경기장을 지은 곳도 중국철도건설이라는 국영기업이다. 각종 월드컵용품의 70%를 중국 저장성 이우시의 소상품시장에서 조달해 갔다는 사실이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트위터나 다수 내외신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상품, 기업, 산업 등 중국의 요소들이 타국 월드컵에 가득 반영됐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비록 자괴감이 섞이긴 했지만, 오죽하면 이번 월드컵에 중국은 선수 빼고 다 보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까.
이쯤에서 중국이 월드컵을 바라보는 시각, 중국과 축구라는 스포츠 간의 관계를 생각해 봤다. 애한교직(愛恨交織),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하지만 그만큼 아쉽고 미운 마음이 앞서는 애증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축구 이외의 종목에서는 국제무대에서 중국 선수의 우승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중국은 이제 하계올림픽은 물론 동계올림픽에서도 서양이 강국이라 여겨져 왔던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 세계를 놀라게 하곤 한다.
그런데 왜 중국은 유독 축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까? 필자가 주변 중국인들에게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했을 때 중복해서 돌아온 답변은 “중국 축구 프로리그에서 받는 대우가 상향 평준화돼 있다 보니 선수들이 팀에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웬만하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외국인 용병 선수들과 경쟁해 실력을 키우려 하기보다는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현실에 쉽게 안주한다” 등이었다. 이러한 답변을 통해 중국인들이 이 문제를 생각보다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축구를 제쳐두고 중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앞에서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공고히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산업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국민 스포츠 부문 소비 규모는 2021년 기준 2조 위안(약 400조 원)을 돌파했다. 2008년, 2022년 두 번의 올림픽이 중국 스포츠와 레저 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또한 스포츠산업이 디지털, 스마트와 만나 ICT 융합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중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산당이 스포츠를 국민 통합과 단결의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하고자 한 측면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2013년부터 줄곧 현대적 사회주의 건설의 중요한 목표로 ‘스포츠 강국 건설’을 내세워 왔다. 전 국민이 각종 스포츠를 손쉽게 접해 높은 수준의 스포츠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위 ‘건강한 중국’을 건설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정책이 국제무대에서 중국 선수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쾌거로 이어져 중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국가, 당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전후로 스포츠 열풍을 비즈니스와 소비 촉진으로 연결하고자 많은 활동을 벌였다. 중국의 여러 공공기관에서 동계스포츠산업을 주제로 각종 포럼, 교류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 기관들과 기업들을 초청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코트라도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해 한국의 동계스포츠와 레저 관련 제품을 중국시장에 선보이고자 강원도 지자체와 협업해 전시 부스를 운영하고 비즈니스 상담회를 개최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첫 겨울이 시작된 지난 11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 등 중국 공공기관들은 자국의 동계스포츠 발전 현황을 알리고 다시 한번 동계스포츠 붐을 일으키기 위한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중국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올해 6월 예정인 아시아대륙 축구 챔피언십인 아시안컵 개최는 포기했지만, 1년 연기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오는 9월 개최할 예정이다. 최근 들어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여러 한계에 부딪히면서 중국도 위드 코로나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해지자, 정부의 방역 조치도 한층 완화된 분위기다. 중국이 머지않아 오랜 빗장을 풀고 다시 해외와 자유로운 교류를 시작한다면, 올해 예정된 아시안게임 역시 중국의 스포츠산업 발전에 적지 않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중국, 축구 굴기 내세워 세계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중국의 발전전략 뒤에는 ‘굴기(屈起)’라는 두 글자가 종종 등장한다. 제조업 굴기, 반도체 굴기, 항공우주 굴기 등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고급인재를 빨아들이며 핵심산업에서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축구에도 굴기가 붙어 있다. 아직은 길이 험난해 보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정부의 막강한 지원과 과학기술에 힘입은 축구 굴기를 내세워 세계 축구 무대에 발을 내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26년 열리는 월드컵부터 48개 국가에 출전권이 주어지면서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애한교직이라 묘사한 중국과 축구와의 관계가 간절함으로 바뀌고, 간절함이 환골탈태를 이뤄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