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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순탁의 셋리스트힙합적 탁월성에 매력적인 대중성까지
배순탁 음악평론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2023년 01월호


에픽하이(Epik High)를 좋아한다. 원래 좋아했지만 그들의 라이브를 보고 더 좋아졌다. 혹시 에픽하이 공연을 본 적 있나. 만약 없다면 꼭 한번 경험해 보라고 추천한다. 장담할 수 있다. 그들의 라이브는 최고 수준이다. 3인조로 할 때도, 풀 밴드와 할 때도 잊히지 않을 라이브를 들려준다.

바로 위 문장에 주목하기 바란다. 라이브의 핵심은 무엇보다 현장감이다. 그렇다면 이 현장감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까. 정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인간 육체가 지닌 물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브 공연에 가는 이유가 뭔가. 뮤지션과 연주자의 입과 손길로 빚어낸 소리를 실시간으로 감상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그 소리에 매혹돼 신나게 뛰거나 부딪히고, 그도 아니면 깊이 감동받는 순간을 맞기 위해 우리는 공연장으로 향한다.

따라서 특별한 예외가 아닌 이상 풀 밴드 라이브가 3인조 혹은 MR(녹음된 반주) 틀어놓고 하는 라이브보다 강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살아 있는 전설 에미넴(Eminem)의 라이브를 두 번 봤는데 한 번은 MR 라이브, 다른 한 번은 풀 밴드 라이브였다. 이건 뭐, 둘 중 후자 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이런 이유로 에픽하이가 멤버 3명으로만 하는 라이브에 처음 갔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적당히 보다가 나와야겠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 공연, 앙코르까지 해서 끝까지 다 봤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선수였다. 단 3명으로, 환상적인 호흡을 뽐내면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하긴 그들이 그룹을 결성한 해는 2001년, 저 공연이 있기까지 15년 이상을 지지고 볶고 했을 것이다. 해체 위기까지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에픽하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완전체가 됐다. 달랑 3명이었음에도 풀 밴드 라이브 못지않은 라이브를 선사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1집을 발표하기 전에는 사기를 당해 발매가 불발됐고, 뿔뿔이 흩어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들이 처음 주목받은 건 2003년이었다. 마침내 기획사 계약에 성공한 뒤 발표한이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동시에 힙합 마니아들에게도 찬사를 얻어낸 것이다. 여기에 바로 에픽하이 세계의 요체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음악은, 힙합적인 관점에서 탁월한 와중에도 매력적인 대중성을 잃지 않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좋은 곡이 너무 많아 일일이 적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힙합 잘 몰라도 무조건 호감 갈 것이 분명하다” 싶은 노래만 꼽아본다.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노래라면 아무래도 윤하가 참여한 ‘우산’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발표한 3집 의 타이틀 ‘Fly’는 무려 동방신기를 꺾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이 외에 ‘Top Gun’(2009), ‘트로트’(2009), ‘Run’(2010), ‘춥다(Feat. 이하이)’ (2012)를 추천하고 싶다.

이제 앨범으로 선택해야 할 차례다. 2014년 <신발장>이 내 기준에 영순위다. 아마도 에픽하이가 발표한 베스트 오프너일 ‘막을 올리며’를 시작으로 ‘신발장’에 이르기까지 빠지는 곡 하나가 없다. 이 음반에서 에픽하이는 뭐랄까.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 와중에도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조원선의 무심한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활용한 ‘막을 올리며’와 ‘Amor Fati(Feat. 김종완 of Nell)’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Amor Fati’의 다음 랩 가사로 글을 맺는다. 내가 아는 한, 한글로 써진 랩 가사 중 이보다 완성도 높은 경우는 많지 않다. 곱씹어 본 뒤 음악을 감상하면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멀쩡한 다리 꺾고 목발을 짚게 하는가/ 허기지면 독사과 씹게 하는가/
손에 손 대신 총, 칼을 쥐게 하는가/ 당신들은 깨끗한가/ 멀쩡한 날개 꺾고 왜 땅을 기게 하는가/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하는가/
죄 없는 자는 돌 던져도 된다는 말인가/ 돌 던지는 건 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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