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태국에 왔을 때 필자가 가장 놀란 부분은 일본의 흔적이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방콕의 프롬퐁, 통로 지역은 일본 상점과 일본인이 하도 많아서 ‘리틀 재팬’, ‘도쿄도 방콕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태국 내에 일식당이 5,300개가 넘고, 일본 기업은 약 6천 개사, 일본 교민은 8만2천 명에 이른다. 태국 내 한국 기업(약 400개사)이나 한국 교민(약 1만8천 명)에 비해 각각 15배, 4.6배 많은 수준이다.
일본은 태국을 인도차이나반도의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하고 1970년대 초부터 공적개발원조(ODA)를 활용해 일본 기업의 태국 진출을 지원했으며, 1970년대부터 태국의 최대 투자국이 됐다. 태국 상무부와 투자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일본 기업 137개사가 태국에 투자한 금액은 총 390억 밧(약 1조4,242억 원)에 달한다. 일본 기업들이 금융 및 제조업 분야를 선점해 오다 보니 한국 금융사와 기업의 태국 투자·진출 실적은 이웃 나라 베트남으로의 투자·진출에 비해 저조한 편이다. 그런데 사회·경제 전반에 일본의 자본과 문화가 침투된 태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문화 저변에서 한국 소프트파워 영향력 커져…
전기차발 자동차시장 지각변동도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
지난해 9월 태국 마히돌대 연구팀이 18세 이상 태국인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프트파워 영향력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문화, 패션·라이프, 드라마·영화 부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일례로 지난해 태국 넷플릭스 TV 드라마 부문 1~10위를 모두 한국 드라마가 차지했으며(2022년 12월 21일 기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 속에서 태국에 우영우 김밥이 등장하고 김밥 판매량이 크게 늘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영향으로 소주 판매량이 증가해 태국 편의점에서 쉽게 소주를 접할 수 있게 됐을 정도로 소주가 태국 주류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이렇듯 태국 사회·문화 저변에 한국 소프트파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태국인들의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태국으로의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소비재 수출과 외식 프랜차이즈 진출이 더욱 유망해질 것으로 보인다. 태국은 연간 3,8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코로나19 팬데믹 이전 기준)하는 관광대국으로, 태국시장 히트상품은 아세안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태국은 세계 10위 자동차 생산국이자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50% 이상을 수출하는 자동차 수출국이기도 하다. 일례로 지난해 1~10월 태국의 자동차 생산대수 153만4,754대 중 80만672대가 수출됐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지난해 수출이 라오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주변 동남아 국가 중심으로 전년 대비 103% 증가했다.
1962년 닛산자동차가 태국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한 후 도요타, 마쓰다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태국에 속속 진출했으며, 1987년 미쓰비시자동차는 태국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하는 최초의 생산업체가 됐다. 이렇듯 일본 자동차 업계는 오랫동안 태국 자동차시장에서 지배적인 입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태국 자동차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태국 국토교통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태국 내 전기차 판매량 1~3위를 모두 중국 자동차 회사가 차지했다. 지난해 1~10월 누적 신규 자동차 등록대수가 오라(ORA) 3,121대, 밍줴(MG) 2,042대, 중국 지리차의 자회사인 볼보 542대로, 세 자동차 회사의 태국 전기차시장 점유율이 81%에 달했다.
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30%를 전기차로 대체하고 태국을 아세안의 전기차 생산거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전기차 분야 투자·진출 기업에 각종 세금우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 최대의 전기차 생산업체 비야디(BYD)는 첫 해외 전기차 공장 건설지로 태국을 선정했으며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도 태국 현지 전기차 생산을 공식화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전환에 다소 소극적인 가운데 중국을 비롯한 대만, 독일, 미국 등의 태국 전기차시장 진출 및 선점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시장에서 일본차에 밀려 고전해 온 우리 기업은 전기차 및 전기차 충전시설 시장을 모니터링해 태국 진출을 고려하고, 장기적으로 태국을 교두보로 한 동남아 지역 전기차시장 공략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디지털 협력 수요 확대,
한국 기업의 태국 진출에 청신호
태국 정부는 산업 고부가가치화, 사회·경제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팬데믹 기간에 태국 내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이 정착됐고, 태국 정부의 5G 상용화 추진으로 산업·사회 전반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 강점이 있는 한국 대·중소기업의 진출 또한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태국의 빠른 도시화와 인구 고령화는 태국 내 스마트시티, 디지털 헬스케어 등의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지난 12월 네이버 클라우드와 코트라는 태국 방콕에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의 태국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콘퍼런스(DHTC)’를 개최했으며, 협력사들과 함께 태국에 스마트병원 시스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분야에서는 지능형 교통체계(ITS), 지능형 건물 에너지 관리시스템(BEMS)이 유망하며, 이 외에도 사이버 보안, 원격진료, 스마트팜 분야 진출도 전망이 좋다. 한국의 강점인 디지털 역량을 기반으로 태국 신산업을 선점하고, 태국을 거점으로 동남아 전체로 성공 경험을 확산해 한·아세안 동반성장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높아지는 한국 소프트파워 영향력과 자동차산업의 지각변화, 디지털경제 수요 증가는 한국 기업의 태국 진출에 청신호다. 특히 올해는 양국이 수교를 맺은 지 65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지난 12월에 양국은 태국 방콕에서 ‘2023~2024년 한국-태국 상호 방문의 해’를 선포하며 관광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국 간 문화·관광 교류가 증진되는 만큼 경제 분야 협력도 더욱 확대돼 태국 방콕에 ‘서울시 방콕구’라는 별명이 생기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