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독일 연방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가능성에 대비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도입해 큰 효과를 본 ‘쿠어츠아르바이트(Kurzarbeit)’, 즉 단축근무지원제도를 확대·개편해 다시 시행했다. 이 제도는 기업의 이익이 단기적으로 감소할 때 인적 구조조정을 택하는 대신 숙련 노동자를 보호하고 대량해고를 회피해 건실한 독일경제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단축근무지원제도의 시행 배경과 내용, 성과 등을 소개한다.
단축근무지원제도를 도입할 당시 독일은 경기침체를 맞아 고용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2006년 실업률이 11%를 기록하고 실업자 수가 500만 명을 넘는 등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침체기였다. 언론은 독일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영국, 두바이와 같이 금융업과 서비스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당시 많은 유럽 국가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택했다. 그러나 독일은 수출과 내수 부진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택하는 대신 노사정 합의를 통해 단축근무지원제도를 도입했다.
근로자의 임금 감소분 중 60~67% 지원
단축근무지원제도는 세계적 경기침체, 금융위기, 천재지변 등으로 기업이 경영위기에 처할 경우 노동시장에 발생할 수 있는 급격한 고용불안정과 대규모 실업 사태 등을 방지하기 위한 금전적 지원제도다. 이는 첫째, 기업이 숙련된 종업원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둘째, 종업원들에게 고용안정성을 제공하며 셋째, 단축근무로 인한 종업원의 급여손실을 최소화함으로써 독일 사회의 지속 가능한 안정성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독일 연방정부는 단축근무지원제도를 통해 정부 재원을 대폭 투입함으로써 대규모 구조조정을 막았다.
2010년 말 이후 세계경제가 급속도로 회복되고 수출물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근로조건이 점진적으로 정상화됐다. 독일 기업들은 금융위기 때 감소한 임금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특근 등을 시행하며 다시 초우량 기업으로 세계시장에 재등장한다. 밀려드는 해외 주문물량을 맞추기 위해 유럽 등지에서 해고된 전문 엔지니어와 기술자를 대거 영입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2019년 독일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기술 제조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당시 독일 정부의 노력과 인간 중심의 노사화합 문화는 독일이 금융위기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빨리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은 코로나19 경제위기 때도 그 방식을 계승했고, 팬데믹 여파 등에 따른 경기둔화 움직임 속에서도 단축근무지원제도를 통해 2023년 1월 기준 실업률 5%대의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단축근무지원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업은 인력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주5일 근무를 주3일, 주2일 근무로 축소해 임금을 삭감하고 정부는 임금 감소분의 일정 부분을 지원한다. 20년 차의 숙련된 엔지니어가 주5일 근무에 세후 4천 유로(약 520만 원)를 받는다고 하면, 단축근무로 주 2.5일만 근무하고 세후 2천 유로(약 260만 원)만 지급받는 경우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때 정부가 아이가 있는 근로자에게는 여기서 발생하는 실소득 차액의 67%(약 174만 원)를, 그렇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60%(156만 원)를 별도로 지급한다. 즉 줄어드는 실질소득을 최소화해 근로자 생계유지의 어려움은 줄이고, 독일경제의 고용안정성은 유지한 것이다. 이 경우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에서 50% 감소한 주 20시간이 돼도, 실질소득 감소율은 50%가 아니라 16.5%에 불과하게 된다.
구체적인 지원 요건을 보면 종업원 중 최소 3분의 1이 불가피하게 단축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월 급여 감소 폭이 10%가 넘는 경우엔 최대 12개월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 제도 시행 기한이 2023년 상반기까지 연장됐으며, 독일 정부는 경제상황에 따라 추가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사회안정 제고, 기업은 신속한 경기대응 가능하며
노동자는 고용안정 얻는 최선의 노사정 합의점
단축근무지원제도와 관련해 일부 시장경제주의자들은 감축된 노동시간만큼 급여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와 안정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다수의 입장이다.
독일 한스 뵈클러 재단이 2021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단축근무지원제도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 때 33만여 명의 노동자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220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를 피할 수 있었다. 기업들이 숙련된 엔지니어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함으로써 경기가 회복됐을 때 급증한 수출 주문에 잘 대응할 수 있었다는 성과적 측면을 감안해 독일 경제계도 이 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 보고서는 미혼 노동자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8.6%,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18.4%의 임금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도 경제위기 때에는 일자리를 지키고 경기가 회복되면 임금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기에 다수가 단축근무지원제도를 찬성하고 있다.
모두를 100% 만족시키는 시스템은 없다. 하지만 이 제도는 정부와 회사 그리고 노동자가 찾은 최선의 합의점이라고 평가된다. 독일 정부 입장에서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 있고, 회사는 구조조정을 피하면서 예산을 절감할 뿐 아니라 경기회복 시에 숙련된 노동인력을 즉시 활용할 수 있으며, 노동자는 소득은 일정 부분 감소하지만 고용안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1석 3조의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정부 입장에서 경제위기 시에 참조할 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이 일어날 경우 막대한 실업급여 재원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금리인상 시기, 긴축 시기에 한국의 인적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이 확대될 수 있는 상황에서 독일의 단축근무지원제도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