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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하얼빈 동토에 봄은 오는가
허성무 KOTRA 중국 하얼빈무역관장 2023년 04월호

중국 최북단 북위 43~53도에 걸쳐 위치한 흑룡강성의 겨울은 10월에 시작돼 이듬해 4월 말까지 이어진다. 흑룡강성의 중심지인 하얼빈에는 최남단 지역인 해남성 번호판을 단 차량이 유달리 많이 보인다. 흑룡강성 재력가들이 세컨드카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해남성 차량이다. 해마다 10월이면 하얼빈의 수많은 시니어 인력이 겨울을 나기 위해 해남성으로 이동하는데, 일부는 2~3주간 차를 직접 몰고 4천여km의 여정을 쉬엄쉬엄 즐기며 가기도 한다. 이들이 자리를 비운 6개월간 하얼빈의 경제는 어떻게 유지될까?

기존 관광업·농림업·중공업만으론 성장에 한계…
한국 등 외국계 기업 유치에 총력


올겨울 최저 영하 35도까지 내려간 중국의 빙성(?城) 하얼빈에는 80여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갔다. 지난해 12월부터 71일간 개최된 ‘하얼빈 빙설대세계’를 보기 위해서다. 올해 60주년을 맞이한 이 빙등 조각축제는 하얼빈 시민들의 소박한 자랑이기도 하다. 올해 설 명절인 춘절 연휴 1주일 기간에만 매출이 42억 위안(약 8,100억 원)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의 89% 수준까지 회복됐다.

소설가 이효석이 묵었던 모던호텔이 위치한 중앙대가는 1,450m의 보행자 전용거리로,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유럽 및 러시아풍 건물이 즐비하다. 사시사철 국내외 관광객과 하얼빈 시민들로 북적인다. 하얼빈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연간 8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여행지로 연간 1천억 위안(약 19조 원) 수준의 관광수입을 유지해 오고 있다.

러일전쟁을 겪은 하얼빈에는 1907년 러시아 총영사관을 시작으로 영국,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총영사관이 속속 설립돼 1900년대 초에는 19개국 21개 영사관이 운영됐다. 외국계 은행으로는 HSBC와 시티은행의 활동이 활발했다. 1922년 하얼빈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9만여 명으로 시내 인구의 52%에 달했다. 당시 사용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현재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하얼빈은 2010년 유엔으로부터 ‘음악의 도시’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음악활동이 활발한 도시이기도 하다. 한중 수교 이전인 1989년에 이미 흑룡강성에 공장을 설립해 피아노 부품을 만들고 있는 삼익악기는 흑룡강성에 투자한 최초의 한국 기업이다.

‘공화국의 맏이’라는 별명을 가진 흑룡강성은 1949년 신중국 설립 이후 중국 현대사의 한 면을 장식한 데 이어 중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자 중공업 기지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중국 전체 인구의 9분의 1은 여기서 생산된 식량을 먹는다. 2022년 경지면적은 1,466헥타르로 전국의 12.4%에 달했고, 식량 생산량은 전국의 11.3% 수준인 7,760만 톤으로 13년 연속 중국 내 1위 자리를 지켰다. 이곳에서 생산된 경비행기, 터빈, 보일러 등 중공업 제품은 중국 군용 및 내수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명문 과학기술대학인 하얼빈공업대는 중국 우주항공산업의 대표적 산실이다. 현지 국유기업을 주축으로 농림업과 중공업이 이 지역 경제를 이끌어왔고, 중국 내수만으로도 지역산업이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수 중심의 농림업, 중공업, 관광업에만 의존해서는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역부족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지역산업과 관련해 여러 우려가 있는데, 먼저 국유기업의 비중이 높고 기업에 대한 지방정부의 입김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존에 투자했던 외국계 기업들은 물론 중국 국내 기업들 중에도 철수한 기업이 많다. 공급업체에 대한 대금 결제주기가 다른 지역보다 길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또한 50여 개의 대학에서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게다가 이 지역 젊은이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정부 등 공공기관 근무를 더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문제들과 함께 과거의 성공과 안정적인 내수시장에 안주해 서비스 마인드와 위기의식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곳 정계·재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흑룡강성 정부와 산하기관의 변신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주야를 불문한 근무와 주중 5일에 주말 이틀을 더한 초과근무를 가리키는 ‘백가흑 오가이(白加黑 五加二)’가 일상으로, 담당 공무원이 주말에 기업 담당자에게 전화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흑룡강성에서 완성차를 제조하는 볼보(Volvo), 자동차용 시트를 생산하는 아디엔트(Adient), 유제품을 생산하는 네슬레(Nestle) 등 외국계 기업들은 이곳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한국과의 교역이 활발하지 않은 흑룡강성 정부는 양국 간 교역과 투자 확대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통제가 풀리며 투자유치를 위한 공무원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다른 지역에 소재한 한국 기업을 방문해 흑룡강성으로 투자할 것을 권유하는 한편 한국 대기업 및 중견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방한 계획도 수립 중이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세밀히 분석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술과 지재권을 중국 공급사슬에 접목해
양국 모두 윈윈하는 전략 필요


수교 30주년을 갓 넘긴 한중 양국의 전략산업은 대부분 경쟁 관계에 있다. 중국 내에서 한국산 완제품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고, 중국 내수시장 및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산업재와 소비재가 우위를 점하면서 그 비중도 높아지고 있어 우리의 중국시장 접근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기업은 중국 제조기업 공급사슬 내에 이들의 수요에 맞는 기술과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을 접목해 로열티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꾀할 수 있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우리의 지재권을 활용해 생산한 제품을 세계시장으로 수출하면서 중국 정부의 수출장려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일방적 수출이 아닌, 한국과의 협업을 통해 중국 제조기업의 이익도 함께 증대하는 사업모델이 최근 하얼빈과 흑룡강성에서 환영받기 시작했다. 이 지역 대표산업인 목축업, 농업,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한국 지재권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활용해 자사의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

우리 국토 면적의 4.5배에 달하는 흑룡강성 내 대형 스마트목장 및 스마트팜의 눈높이는 이미 네덜란드와 이스라엘 등 세계 최고 수준에 맞춰져 있다. 이곳의 중소·중견 목장과 농장도 우리나라에서는 큰 규모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들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만하다.

대형 목장·농장과의 협업을 꾸준히 시도해 이들이 보유한 대규모 공급망에 파고들어 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목장에서 배출되는 분뇨를 정화해 비료로 가공한 뒤 이를 농장에 공급해 재활용하는 사업도 유력한 먹거리로 주목받는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한국산 의료기기, 원료의약품(API), 일반 의약품을 수입하기 희망하며, 신약 개발 단계에서의 공동개발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국 API를 사용하면 중간 약품의 품질기준을 맞출 성공률이 높아 이를 수입한 후 현지에서 가공하려는 수요가 많다.

우리 산학연에서 창출된 우수한 지재권이 충분히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중국시장에서 사업화함으로써 중국 내수시장과 세계시장에서 검증받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제조력에 한국의 지재권을 이식해 중국의 수출이 확대되면 우리의 로열티 수익도 늘어나는 등 한국의 지재권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선순환 고리도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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