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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미식제주시 조천읍 김동찬 씨네 밥상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탐식생활』 저자, 다품종 과일가게 ‘계절미식’ 운영 2023년 04월호

판매하고 싶은 과일을 조달하기 위해 산지를 다니며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 있다. 바로 현지 토박이들의 ‘집밥’이다. 생산자들이 대부분 토박이여서 밥 한 끼 청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왠지 추잡스럽고 고약한 갑질로 느껴질까 저어해 차마 하지 못했다. 너무너무 궁금한데, 딱 한마디 자연스럽게 부탁드려 보면 되는데. 그저 물러서며 바싹 약만 오르곤 한다.

그렇게 쓸쓸하게 돌아서서 혼자 찾게 되는 연료보급처는 빤하다. 지방에서 혼밥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곳도 아직까지는 희소하다 보니 기껏 한 끼 잘 먹었다 할 만한 곳이 ‘함바집’이거나 혼자 정식 2인분을 주문하는 식의 관광객용 식당 양극단 중 하나다. 마땅치 않을 때는 대충 김밥이나 두어 줄 사서 물고 다니거나 과자 부스러기, 과일 샘플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이런 게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과일 판매자의 현실 버전이라니!

얼마 전 만감류 ‘써니트’와 ‘옐로우 볼’ 신품종 밭을 보러 제주에 갔다가 용감하게 말을 꺼내 봤다. ‘미래향’ 신품종을 재배·생산하며 옥신각신 미운 정 고운 정이 생긴 생산자 김동찬 씨한테서 전화가 왔을 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꺼내 볼 수 있었다. “삼춘, 지금 제주 공항이긴 한데 다른 일 생겨서 저녁때 다 돼서 농장 갈 것 같네요. 기왕 밥때니 저도 밥 한 술 같이 뜨게 해주실래요?”

갑자기, 게다가 몇 시간 전에 손님을 맞아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내 심리 구조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일 중 죽음이나 이별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생산자 아내분이 해주셨다. 한 30분 후 “일 보고 천천히 와요. 우리랑 같이 밥 먹어요. 별 건 없는데.”라는 내용의 제주어 전화가 걸려 왔다. 와우, 그때부터 나는 이미 입맛이 돌고 제주 토박이 음식에 대한 기대로 하루가 금세 가버렸다.

‘별거 없는’ 밥상은 실로 감동이었다. 밥상 가득 상이 차려졌다. 소박한 생일상같이 보이기도 했다. 새로 한 잡곡밥은 갓 뜸이 다 들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구수한 잡곡 내음이 진했다. 국물 자작하게 한 제주식 두루치기는 쫄깃한 돼지고기와 단단한 손두부, 대파가 듬뿍 들어있었다. 옆집에서 받아왔다는 오골계는 근위까지 넣고 양파와 대파를 함께 볶아 씹는 맛이 기가 막혔다. 가장 전율을 느꼈던 것은 콩국. 제주 토속 음식인데, 콩가루 푼 국물에 채 썬 무가 풍성하게 들어있다. 따끈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고 고소한 감칠맛도 일품이라 다음엔 조리법도 배워볼 참이다. 꼬릿꼬릿한 제주식 멜젓을 사용한 배추, 무 두 가지 김치는 과연 다른 지역의 멸치액젓 김치와는 달리 한층 더 짙은 감칠맛을 내 국토 최남단 김치의 맛을 제대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침도 굶은 사람처럼, 아니 실제로 아침부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어 치웠다. 갑작스레 초대받은 손님의 예의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동안 충족되지 못했던 산지의 집밥 욕구를 다 채우며 잡곡밥을 씹고 두루치기를 넘기고 콩국을 떠먹었다. 3년 전의 허기까지 다 채워지는 듯한 ‘별거 없는’ 한 상이었다.

지난겨울 옥신각신하던 미래향 열매는 다 없어졌지만, 보조가온을 하는 봄 하우스에는 다시 미래향 꽃망울이 벌써 맺히기 시작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이제 밥 몇 끼 먹으면 흰 꽃이 만개하고 그 꽃이 지고 붉은 열매가 맺혀 두툼하게 차오르는 겨울이 될 테다. 그때까지 나는 또 어디에 가서 어느 생산자와 옥신각신하다가 이런 감격스러운 밥상을 청해볼 수 있을까?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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