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생존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지구온도 1.5도 상승 제한’이 파리기후협정에서 공식화된 이후 국제사회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한 기후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해 왔다. 이에 지난 2021년부터 파리협정 이행이 본격화되며 각국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재설정하고 화석연료 감축정책을 정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개도국에서 화석에너지원에 기반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면서 기후위기의 역사적 책임이 선진국에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손실과 피해 기금’과 ‘정의로운 전환 작업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기후정의운동 당사자주의로의 도약을 함의하며 개도국의 입장이 다수 채택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상세 운영방안은 확립되지 않아 지속적인 동력을 유지하는 데 아쉬운 측면이 있다.
탄소배출량 가장 적은 아프리카,
기후변화로 인한 재정 손실은 가장 막대
기후변화의 피해가 극심한 지역 중 ‘정의로운 전환’의 정착 및 배상이 시급한 지역은 단연 아프리카일 것이다. 2021년까지 누적된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단 3%에 불과하다. 하지만 탄소배출량이 가장 적은 아프리카 11개국이 기후변화로 입은 재정적 손실은 가장 막대하다.
지난해 기후정책이니셔티브(CPI)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NDC 이행을 통해 기후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면 2030년까지 약 2조5천억 달러의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확보된 재원은 295억 달러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 예상되는 만큼 아프리카의 투자환경을 고려한 혁신적인 기후재정 해법을 도입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아프리카 지역으로 연간 유입되는 기후재정은 인구당 10.4달러로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특히 민간 부문의 투자비율은 2020년 기준 약 13%로 다른 지역 개도국 평균인 42%에 비해 현저히 낮다. 공공재원과 민간자본을 아우르는 기후재정 규모의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현재 정치적·경제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의 위험도가 높아 민간자본이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재정지원 방식이 아프리카의 투자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첫째는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다. 공공 부문 자금을 촉매로 이용해 민간 투자를 이끄는 방식으로, OECD에서는 ‘개도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추가적 재원 동원으로서의 전략적 활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혼합금융의 여러 메커니즘 중에서도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공적 서비스 공급 사업에 투자하는 민관협력사업(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은 참여주체들이 협상을 통해 위험 및 수익구조 분배를 설계하기 때문에 가장 제도화된 형태로 평가받는다. 2018년 기준 개도국에 지원된 혼합금융의 46%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투입된 것을 볼 때 혼합금융은 아프리카에 매우 중요한 개발금융 채널이다. 특히 기대수익률이 높은 에너지 및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혼합금융이 아프리카의 낮은 에너지 보급률 문제를 극복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아프리카 기후재정 해법으로
혼합금융, 기후 담보 채무스와프 방식에 주목
둘째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대외채무를 교환하는 방식인 ‘기후 담보 채무스와프(DFC Swaps; Debt-for-Climate Swaps)’다. 이는 개도국의 기후자금 조달과 외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메커니즘으로 대두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의 대외부채는 2020년 기준 약 7천억 달러로 추산되며 유입되는 기후금융의 3분의 2 정도가 부채수단을 활용한 방식임을 고려할 때, 채무스와프 방식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특히 녹색채권(green bond)과 융합해 개발효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채권을 발행해 채무국의 부채를 탕감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아프리카 정부에 외채-현금 교환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일례로 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세이셸의 채무스와프의 경우, 비영리 단체 국제자연보호협회(TNC; The Nature Conservancy)가 채권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을 통해 국가 부채를 대규모 매입하고 재융자하는 대가로 세이셸 정부가 신규 조달 자본을 해양 보호에 사용하는 거래가 성사되기도 했다. 기후 담보 채무스와프가 아프리카 지역의 혁신적 재정해법으로 독려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다.
아프리카 지역의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에너지 협력국으로서의 높은 가능성도 전망됨에 따라 한국 정부 또한 ‘아프리카 개발협력전략’을 수립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춤 지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2022~2024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중기운용방안’에서는 아프리카 중소득국을 대상으로 하는 혼합금융[경협증진자금(EDPF)·수출금융]과 PPP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EDCF-EDPF를 연계한 이집트 룩소르-하이댐 철도 현대화사업이 착수될 예정이다. 이런 기조 아래 한국-아프리카 간 다층적 협력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개도국과 선진국 간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기술협력 및 재정지원이 중요한 기후변화 분야에서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있다. 기후변화체제의 근간인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달성할 수 있길 바란다.